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악화만으로는 최근의 일자리 감소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때문에 고용지표가 악화됐다는 정부 및 청와대의 주장과는 다른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KDI "인구구조 변화만으론 고용악화 설명 안돼"
◆정부와 다른 진단 내놔

KDI는 11일 발표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지난 7월 취업자 수 증가폭의 급격한 위축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했다. 취업자 수는 지난해 월평균 31만7000명(전년 동월 대비) 늘었지만 올해 2월부터 10만 명대로 주저앉은 뒤 7월엔 5000명까지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이어지던 2010년 1월 1만 명이 감소한 뒤 8년6개월 만에 최악의 고용지표를 나타냈다. 8월 취업자 수는 12일 발표된다.

보고서 작성을 총괄한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 외에도 산업경쟁력 저하 및 이에 따른 구조조정,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다만 (최저임금 인상 등이) 어느 정도까지 고용 악화에 영향을 줬다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그동안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감소 때문에 고용 상황이 구조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3일 JTBC 인터뷰에서 “(고용 악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통계청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인구구조 문제 때문”이라며 “‘그것(고용 악화)이 소득주도성장 결과’라고만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 개선보다 하락에 무게

KDI는 이달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지난달까지 사용했던 ‘경기 개선 추세’라는 문구를 쓰지 않았다. 대신 “경기의 빠른 하락에 대한 위험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경기 하락 가능성이 있지만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으로, 사실상 경기 전망을 ‘개선’에서 ‘하락’으로 전환한 것이다.

KDI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생산 측면의 경기 개선 추세가 더욱 완만해지고 있지만 개선 추세 자체는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투자 부진을 중심으로 내수 증가세가 약화되면서 고용도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KDI는 “기계류를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7월 설비투자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0.4% 감소했다. 특히 기계류 투자 감소폭(-17%)이 컸다. 반도체 분야 대규모 투자가 일단락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KDI는 “지난달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액은 전년 동월 대비 66.1% 감소했는데 이는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비도 여전히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9.2로 전월 대비 1.8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밑이면 경기를 비관하는 소비자가 낙관하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다.

KDI는 다만 수출 증가세가 유지되는 게 경기의 빠른 하강을 막고 있다고 봤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수출액은 14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8% 증가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