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정권력은 누가 쥘까?

2015년 12월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발탁해 첫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취임한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오는 12월13일 임기가 끝나면서 차기 관장 인선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관장 선임은 문재인 정부의 미술문화 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지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21세기형 수장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코드에 기댄 인사거나 전통적 프레임에 갇힌 리더는 미술관의 미래가 담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 청주관(수장보존센터) 등 4개 분점을 거느린 국립현대미술관은 한해 예산만 724억원에 달하고, 학예인력은 135명 안팎이다. 관장이 인사와 예산 운용의 자율권을 갖는 책임경영기관이다. 행정안전부는 이르면 10월 새 관장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이다. 문체부는 개방형 직위 공모 방식으로 선발된 후보들을 1, 2차 면접과 신원조회, 임용심사 등을 거쳐 내년 1월 말께 임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임기는 3년이며, 기관 운영 성과에 따라 재계약도 가능하다.

미술계 안팎에서 마리 관장이 임기 3년 동안 뚜렷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어서 전문성과 능력, 인품을 겸비한 인물이 우선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등 물망

미술계 내부에서는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53)를 비롯해 이용우 전 상하이히말라야미술관장(66),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70), 이영욱 전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61), 성완경 미술평론가(74), 임옥상 민중미술작가(68),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61)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인사권자인 문체부 장관의 ‘낙점’을 받기 위해 온갖 ‘채널’을 동원하는 등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는 소문이다.

여성으로는 처음 서울시립미술관 지휘봉을 잡은 김홍희 이사장이 단연 눈길을 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으로 ‘박 시장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김 이사장은 지난 6년간 서울시립미술관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뉴욕 맨해튼의 헌터칼리지를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미술사학,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 박사과정을 마친 미술계 재원이다.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2003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2006년)을 차례로 맡아 한국 미술의 선진화를 이끌었다.

이용우 전 관장은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거쳐 미술계 현안을 순조롭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화단에서 언론인,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교수 등을 지낸 그는 ‘미술 행정가’ ‘미술계 마당발’로 통한다. 국내에 비엔날레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5년에 광주비엔날레를 기획해 주목받았고, 2013년 세계비엔날레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국내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를 이끌고 있는 김선정 대표도 물망에 올랐다. 국내외 미술계의 폭넓은 네트워크와 미술분야 전문성, 경영 능력을 겸비한 데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여성 고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발표한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 그는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 해외 미술관 전시에 10여 차례 큐레이팅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이영욱 전주대 교수도 거론된다. 이 교수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문화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문예미학회 편집위원, 미술무크지 ‘포럼 A’ 발행인 등으로 활동해 왔다.

이 밖에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66)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전문성·현실감각 뛰어나야

꽁꽁 얼어붙은 미술시장을 살리는 데 전문성과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 기용돼야 한다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동안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세계 미술 흐름에서 이렇다 할 이슈를 만들지 못한 점 등이 관장 선임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명예회장은 “오는 12월 청주 수장고가 개관하면 규모상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 되지만,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며 “조직을 혁신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지도력을 발휘할 인물이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도 “작년 가을부터 경매를 중심으로 ‘온기’가 감지된 미술시장에 왕성한 의욕과 신선한 시각으로 무장한 새 리더가 한국 시각예술의 새 문화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