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트라우마는 사라지고
위험을 감수하는 관행 되살아나
10년전 부동산 담보 대출처럼
학자금 대출이 큰 위험요소로
美 금리 인상이 '强달러' 자극
弱달러 시절 경쟁적 대출받은
신흥국들이 '위기의 진앙지'로
Fed의 기능·부채 관리능력 등
과거 '안전판'도 제 구실못해
경기부양 정책은 强달러 불러
美 무역적자를 더 확대시킬 것
非전통적 경제정책 밀어붙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악 맞을수도
무신경도 무신경이지만 오해와 무지도 위기를 불러오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투자자들은 미국 집값이 1930년 이후로 쭉 그래왔던 것처럼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은행들은 담보대출과 증권 상품을 국채 다루듯 했다. 큰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는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에 대한 대출을 정당화했다.
또 그리스는 어떤가. 그리스에 대한 대출도 같은 유로화를 쓰는 독일에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런 오해와 무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산산이 깨졌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확실히 1930년 대공황보다 규모도 작고 강도도 약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은 똑같은 패턴으로 진행됐다. 통화 역사학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월츠는 1963년 공저에서 “대공황은 경제 불안정과 스태그네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실업 우려 등에 대한 과장된 공포를 깊숙하게 각인시켰다”고 썼다.
위기감은 리스크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를 바꿔 놓았다. 미국인들은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 기업들은 차입을 줄였고 금융산업 각 분야의 연결고리는 단절됐다. 연방정부는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직접 개입하고 나섰다. 특히 가계와 기관투자가들의 리스크에 대한 경계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 30년 동안 연 3%에 달했던 미 국채 수익률은 그 후 한동안 연 0.7%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채권을 계속 사들이고 단기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묶어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안전자산(국채가 대표적)에만 집착하게 된 것이 주된 이유다.
기관투자가들은 위기에 대비한 ‘보수적’ 투자에 몰두했다. 미 가계 투자액 중 주식과 뮤추얼펀드 비중은 2007년 30%에 육박하던 것이 9년 만에 24%로 떨어졌다. 칼라일그룹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9년 사이 일반 주식시장에 비해 6.6% 더 높은 수익을 낸 헤지펀드 실적은 그 후 크게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보수적 투자 패턴이 최근 강세장이 길게 유지되는 이유가 된다. 보수적 투자의 결과로 자산을 빨리 처분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제이슨 토머스 칼라일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불안정이 고착화되고 있다(instability is stabilizing)”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리스크를 피하고 시스템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행동 패턴들을 찾아내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확실히 시간이 갈수록 금융위기 때 받은 트라우마는 사라져 가고 위험 감수 관행이 부활하고 있다. 물론 형태는 이전과 많이 달라지긴 했다. 무분별한 부동산담보 대출이 10년 전 위기를 불러왔다면 이제는 학자금 대출이 큰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투자는 결코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바탕이 됐다.
또 신흥국들은 2009년 이후 지속돼 온 약(弱)달러 시절에 경쟁적으로 달러 대출을 유치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 금리 상승기를 맞아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진앙으로 지목되고 있다. 달러화 위상과 Fed의 기능, 부채 관리능력에 대한 믿음이 과거 위기의 안전판이었다면 이제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새로운 리스크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비(非)전통적 경제정책으로 위기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말 가공할 만한 감세와 재정지출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194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을 더 높일 것이다. 경기부양은 강(强)달러를 불러와 가뜩이나 늘어나고 있는 무역적자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이미 물가를 자극하는 수준의 완전고용 상황에서 이 같은 경기부양이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를 놓고도 논쟁이 분분하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 같은 비전통적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 투자자들이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한 혼란에 기꺼이 대응할 준비가 돼 있고, Fed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실수하지 않을 실력으로 무장돼 있으며, 세계 각국이 군사·경제 분야 슈퍼파워(미국과 중국)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중 하나라도 어그러진다면 모든 시나리오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원제=The Financial Crisis made us afraid of risk-for a while
정리=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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