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레팀노, 문명 꽃피운 마성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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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이야기 (5) 크레타섬 레팀노
숲·바다·호수가 만나는 프리벨리 해변… 순교자의 흔적… 카니발…
우린 지금 神話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이야기 (5) 크레타섬 레팀노
숲·바다·호수가 만나는 프리벨리 해변… 순교자의 흔적… 카니발…
우린 지금 神話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크레타 북서부에 있는 레팀노(Rethymno)는 이라클리오(Iraklio)와 하니아(Chania)에 이어 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두 도시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역사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매력으로 따지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선 채 도시를 지배하는 베네치아 성채, 르네상스의 낭만이 고스란히 담긴 구시가지의 골목, 크레타 인들의 여유로운 삶이 끝없이 펼쳐지는 해변, 젊음과 활기로 가득한 밤거리의 카페까지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어디 그뿐인가. 크레타 독립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담긴 수도원, 숲과 강 그리고 바다가 한곳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자연환경까지. 전통과 현대, 사람과 자연, 활기와 낭만이 공존하는 마성의 도시 레팀노로 떠나보자.
포르테자, 도시를 지배하는 언덕 위의 성
레팀노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포르테자(Fortezza, 혹은 베네치아 성채)다. 팔레오 카스트로(Paleo Kastro) 언덕 꼭대기에서 늠름한 자태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성은 16세기 말 베네치아 제국에 의해 건설됐다. 오토만 제국의 침략과 2차 세계대전 등 역사의 풍파를 지나며 현재는 대부분 건물이 소실됐지만, 보존 상태는 훌륭하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두터운 성벽과 4개의 보루, 오토만 제국의 유산인 술탄 이브라힘 모스크(Sultan Ibrahim Mosque), 주교관(Bishop’s residence) 사이사이를 거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큼 베네치아 성채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붉은 지붕이 가득한 시가지와 푸른 바다의 조화는 언제 봐도 좋지만 일몰 때가 특히 아름답다.
레팀노의 구시가지는 크레타에서 르네상스의 정취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미로를 연상케 하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위로 수백여 채에 달하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다. 여기에 오토만 제국 시절 덧입혀진 오리엔탈 양식과 크레타 전통 양식이 뒤섞이면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 전면부를 살펴보면 목재를 사용한 발코니가 달린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표적인 터키 건축 양식이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아치형 통로나 회랑은 베네치아 양식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자 머리 조각상이 새겨진 리몬디 분수(Rimondi Fountain)와 로지아(Loggia), 본래 가톨릭교회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당시 회교당으로 바뀐 네랏제 모스크(Neratze mosque)가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레팀노의 도시 설계는 이라클리오, 하니아와는 조금 다르다.
두 도시의 경우 구시가지가 모두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해양에서는 도시 내부를 볼 수 없게 돼 있다. 중앙도로 역시 바다와 수직을 이룬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레팀노의 구시가지는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모양새를 취한다. 중앙도로 역시 바다와 평행을 이룬다.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던 탓에 굳이 도시를 숨길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무런 방해물이 없다 보니 해변 또한 끝없이 펼쳐진다. 레팀노의 해변은 베네치아 구항구에서 시작해 레팀노 동쪽의 스칼레타(Skaleta)까지 무려 13㎞가량이나 이어진다.
레팀노는 흔히 ‘젊은 도시’로 불린다. 크레타 주요 대학이 밀집해 있는 탓에 학생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이트 라이프도 자연스레 발달했다. 올드타운 곳곳에 세련된 카페나 클럽, 라이브 바, 저렴한 스낵바 등이 즐비하다. 흥이 넘치는 도시답게 축제도 많이 개최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매년 3월에 열리는 ‘레팀노 카니발’이다. 1914년 처음 시작된 이 카니발은 한마디로 그리스식 핼러윈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전역을 통틀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카니발이다. 이날만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개성 넘치는 코스튬과 분장을 한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과 음악을 즐긴다. 매 여름 열리는 르네상스 축제도 추천할 만하다.
크레타 독립운동 당시 죽음을 택한 사람들
레팀노에서 남쪽으로 약 23㎞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카디 수도원(Arkadi Monastery)으로 향한다. 목가적인 풍경이 담긴 평원을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박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 동방정교 특유의 정갈한 자태가 주변 풍경과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아르카디 수도원의 역사는 대략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였던 아르카디우스(Arkadios) 혹은 동명의 수도승에 의해 설립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아치형의 정문을 넘어서자 아름다운 건물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마당 중앙에 세워진 이 교회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지배 당시 건립됐다. 로마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상부에 매달린 두 개의 종루가 특히 아름답다. 교회 우측 수도승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회랑을 시작으로 수도원 곳곳을 걸어본다. 창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나무,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소리, 수도승들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 뒤섞여 기이할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르카디 수도원은 예로부터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동방정교 수도원 중 하나로 꼽혀왔다. 그러나 크레타 사람들에게 이곳의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바로 이곳에서 크레타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본토의 대부분이 독립했을 당시에도 크레타는 여전히 오토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크레타 1차 항거 운동이 발생한 1866년 오토만의 탄압은 정점에 달했는데, 당시 아르카디 수도원에는 주민과 수도승 그리고 독립군을 포함해 1000여 명의 사람이 은신 중이었다. 오토만군은 수도원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봉쇄 3일째인 11월9일, 적군이 수도원 문을 부수고 앞마당까지 쳐들어오자 크레타인들은 화약 창고를 폭파해 적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크레타 저항 운동에 불을 지폈고, 외부세계에 크레타의 상황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금도 수도원 곳곳에는 처절했던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사한 사이프러스 나무에 새겨진 총탄 자국, 납골당 등이 그것이다. 터키인에게 학살된 36명의 순교자 장소는 현재 박물관이 됐다. 폭탄 자결이 이뤄졌던 장소로 향해본다. 당시 폭발로 천장은 뻥 뚫려 있고 벽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그려놓은 흑백 벽화와 그 앞에 마련된 작은 추모 촛불에 마음이 요동친다. 조국의 독립을 향한 슬픔과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야자나무 숲과 바다가 만나는 곳 프리벨리
이번에는 남부로 가볼 차례다. 레팀노 남부에는 플라키아스(Plakias), 트리오페트라(Triopetra)를 비롯한 작고 예쁜 마을들이 리비아해를 따라 조성돼 있다. 모든 마을과 해변이 각자의 매력을 지녔지만, 그중 프리벨리 해변(Preveli Beach)의 아름다움은 가히 독보적이다. 레팀노 남쪽 웅장하고 거친 쿠르탈리오티코 협곡(Kourtaliotikos) 끝자락에 자리한 프리벨리 해변은 아주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협곡을 관통하며 내려오는 거대한 강(Great River)이 바다와 만나며 약 500m 길이의 신비로운 석호를 형성한다. 강줄기 주변에는 야자나무(Theophrastus palm trees)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야말로 숲과 바다가 그리고 호수가 만나는 장관을 연출한다. 녹음이 가득한 열대 우림 속을 헤매다 별안간 나타나는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꿈 같은 일이 이곳 프리벨리에서는 현실이 되는 셈이다.
프리벨리 협곡 언덕에 있는 모니 프리벨리(Moni Preveli), 즉 프리벨리 수도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 설립됐으며 레팀노의 귀족 가문이었던 프리벨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이곳 역시 크레타의 해방 운동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은신처로 사용됐으며, 아르카디 수도원과 더불어 레팀노를 대표하는 동방정교 수도원으로 꼽힌다. 수도원은 카토(Kato) 수도원과 피소(Pisso) 수도원 총 2개의 단지로 이뤄져 있는데 대부분의 여행객이 찾는 곳은 피소 수도원이다.
건축학적으로는 사각형의 안마당 중앙에 본당이 마련돼 있고, 부수 건물들이 주변을 아우르는 전형적인 정교회 수도원의 모습을 따른다.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패턴에서 수도원 특유의 절제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수도원 한쪽에 마련된 박물관에서는 아이콘, 그림, 의복 등의 컬렉션은 물론 2차 세계대전에 발생한 크레타 전투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수도원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산맥과 그 뒤에 펼쳐진 바다 전망이 특히 아름다우니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레팀노=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 정보
한국과 크레타를 잇는 직항은 없다. 아테네에서 비행기 혹은 페리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이라클리오 혹은 하니아와 레팀노를 잇는 버스는 매일 수시로 운행된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이라클리오에서는 약 1시간30분, 하니아에서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레팀노 베네치아 성채의 개장 시간은 6~9월은 오전 8시30분~오후 8시30분, 10~5월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며 입장료는 4유로다. 아르카디 수도원과 프리벨리 수도원은 연중무휴지만 계절마다 개장 시간이 다르므로 방문 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포르테자, 도시를 지배하는 언덕 위의 성
레팀노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포르테자(Fortezza, 혹은 베네치아 성채)다. 팔레오 카스트로(Paleo Kastro) 언덕 꼭대기에서 늠름한 자태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성은 16세기 말 베네치아 제국에 의해 건설됐다. 오토만 제국의 침략과 2차 세계대전 등 역사의 풍파를 지나며 현재는 대부분 건물이 소실됐지만, 보존 상태는 훌륭하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두터운 성벽과 4개의 보루, 오토만 제국의 유산인 술탄 이브라힘 모스크(Sultan Ibrahim Mosque), 주교관(Bishop’s residence) 사이사이를 거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큼 베네치아 성채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붉은 지붕이 가득한 시가지와 푸른 바다의 조화는 언제 봐도 좋지만 일몰 때가 특히 아름답다.
레팀노의 구시가지는 크레타에서 르네상스의 정취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미로를 연상케 하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위로 수백여 채에 달하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건축물이 줄지어 서 있다. 여기에 오토만 제국 시절 덧입혀진 오리엔탈 양식과 크레타 전통 양식이 뒤섞이면서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 전면부를 살펴보면 목재를 사용한 발코니가 달린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표적인 터키 건축 양식이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아치형 통로나 회랑은 베네치아 양식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자 머리 조각상이 새겨진 리몬디 분수(Rimondi Fountain)와 로지아(Loggia), 본래 가톨릭교회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당시 회교당으로 바뀐 네랏제 모스크(Neratze mosque)가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레팀노의 도시 설계는 이라클리오, 하니아와는 조금 다르다.
두 도시의 경우 구시가지가 모두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해양에서는 도시 내부를 볼 수 없게 돼 있다. 중앙도로 역시 바다와 수직을 이룬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레팀노의 구시가지는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모양새를 취한다. 중앙도로 역시 바다와 평행을 이룬다.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던 탓에 굳이 도시를 숨길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무런 방해물이 없다 보니 해변 또한 끝없이 펼쳐진다. 레팀노의 해변은 베네치아 구항구에서 시작해 레팀노 동쪽의 스칼레타(Skaleta)까지 무려 13㎞가량이나 이어진다.
레팀노는 흔히 ‘젊은 도시’로 불린다. 크레타 주요 대학이 밀집해 있는 탓에 학생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이트 라이프도 자연스레 발달했다. 올드타운 곳곳에 세련된 카페나 클럽, 라이브 바, 저렴한 스낵바 등이 즐비하다. 흥이 넘치는 도시답게 축제도 많이 개최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매년 3월에 열리는 ‘레팀노 카니발’이다. 1914년 처음 시작된 이 카니발은 한마디로 그리스식 핼러윈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전역을 통틀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카니발이다. 이날만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개성 넘치는 코스튬과 분장을 한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과 음악을 즐긴다. 매 여름 열리는 르네상스 축제도 추천할 만하다.
크레타 독립운동 당시 죽음을 택한 사람들
레팀노에서 남쪽으로 약 23㎞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카디 수도원(Arkadi Monastery)으로 향한다. 목가적인 풍경이 담긴 평원을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박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 동방정교 특유의 정갈한 자태가 주변 풍경과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아르카디 수도원의 역사는 대략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였던 아르카디우스(Arkadios) 혹은 동명의 수도승에 의해 설립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아치형의 정문을 넘어서자 아름다운 건물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마당 중앙에 세워진 이 교회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지배 당시 건립됐다. 로마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상부에 매달린 두 개의 종루가 특히 아름답다. 교회 우측 수도승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회랑을 시작으로 수도원 곳곳을 걸어본다. 창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나무,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소리, 수도승들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 뒤섞여 기이할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르카디 수도원은 예로부터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동방정교 수도원 중 하나로 꼽혀왔다. 그러나 크레타 사람들에게 이곳의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바로 이곳에서 크레타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본토의 대부분이 독립했을 당시에도 크레타는 여전히 오토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크레타 1차 항거 운동이 발생한 1866년 오토만의 탄압은 정점에 달했는데, 당시 아르카디 수도원에는 주민과 수도승 그리고 독립군을 포함해 1000여 명의 사람이 은신 중이었다. 오토만군은 수도원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봉쇄 3일째인 11월9일, 적군이 수도원 문을 부수고 앞마당까지 쳐들어오자 크레타인들은 화약 창고를 폭파해 적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크레타 저항 운동에 불을 지폈고, 외부세계에 크레타의 상황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금도 수도원 곳곳에는 처절했던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사한 사이프러스 나무에 새겨진 총탄 자국, 납골당 등이 그것이다. 터키인에게 학살된 36명의 순교자 장소는 현재 박물관이 됐다. 폭탄 자결이 이뤄졌던 장소로 향해본다. 당시 폭발로 천장은 뻥 뚫려 있고 벽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그려놓은 흑백 벽화와 그 앞에 마련된 작은 추모 촛불에 마음이 요동친다. 조국의 독립을 향한 슬픔과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야자나무 숲과 바다가 만나는 곳 프리벨리
이번에는 남부로 가볼 차례다. 레팀노 남부에는 플라키아스(Plakias), 트리오페트라(Triopetra)를 비롯한 작고 예쁜 마을들이 리비아해를 따라 조성돼 있다. 모든 마을과 해변이 각자의 매력을 지녔지만, 그중 프리벨리 해변(Preveli Beach)의 아름다움은 가히 독보적이다. 레팀노 남쪽 웅장하고 거친 쿠르탈리오티코 협곡(Kourtaliotikos) 끝자락에 자리한 프리벨리 해변은 아주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협곡을 관통하며 내려오는 거대한 강(Great River)이 바다와 만나며 약 500m 길이의 신비로운 석호를 형성한다. 강줄기 주변에는 야자나무(Theophrastus palm trees)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야말로 숲과 바다가 그리고 호수가 만나는 장관을 연출한다. 녹음이 가득한 열대 우림 속을 헤매다 별안간 나타나는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꿈 같은 일이 이곳 프리벨리에서는 현실이 되는 셈이다.
프리벨리 협곡 언덕에 있는 모니 프리벨리(Moni Preveli), 즉 프리벨리 수도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 설립됐으며 레팀노의 귀족 가문이었던 프리벨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이곳 역시 크레타의 해방 운동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은신처로 사용됐으며, 아르카디 수도원과 더불어 레팀노를 대표하는 동방정교 수도원으로 꼽힌다. 수도원은 카토(Kato) 수도원과 피소(Pisso) 수도원 총 2개의 단지로 이뤄져 있는데 대부분의 여행객이 찾는 곳은 피소 수도원이다.
건축학적으로는 사각형의 안마당 중앙에 본당이 마련돼 있고, 부수 건물들이 주변을 아우르는 전형적인 정교회 수도원의 모습을 따른다.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패턴에서 수도원 특유의 절제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수도원 한쪽에 마련된 박물관에서는 아이콘, 그림, 의복 등의 컬렉션은 물론 2차 세계대전에 발생한 크레타 전투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수도원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산맥과 그 뒤에 펼쳐진 바다 전망이 특히 아름다우니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레팀노=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 정보
한국과 크레타를 잇는 직항은 없다. 아테네에서 비행기 혹은 페리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이라클리오 혹은 하니아와 레팀노를 잇는 버스는 매일 수시로 운행된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이라클리오에서는 약 1시간30분, 하니아에서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레팀노 베네치아 성채의 개장 시간은 6~9월은 오전 8시30분~오후 8시30분, 10~5월은 오전 10시~오후 5시이며 입장료는 4유로다. 아르카디 수도원과 프리벨리 수도원은 연중무휴지만 계절마다 개장 시간이 다르므로 방문 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