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마틸다’의 아역·성인 배우들이 공연 초반 넘버 ‘미라클’을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마틸다’의 아역·성인 배우들이 공연 초반 넘버 ‘미라클’을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영리한’ 뮤지컬의 모범답안을 보는 듯했다. 연기부터 무대 구성, 스토리 전개까지 공연의 모든 요소들이 영리함과 기발함으로 빛났다. 작은 조각들로 커다란 퍼즐을 정교하게 맞춘 듯 완성도도 높았다. 지난 8일부터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마틸다’ 얘기다.

◆아역 배우만으로도 빛나다

초능력을 지닌 천재 소녀 마틸다 얘기를 다룬 이 작품은 《찰리와 초컬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1916~1990) 소설이 원작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레미제라블’ 이후 25년 만에 만든 대극장용 뮤지컬이다. 영국에선 올리비에상 7개 부문, 미국에선 토니상과 드라마데스크상의 각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국내 공연기획사 신시컴퍼니가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왔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비(非)영어권 나라 중 최초다.

마틸다는 사기꾼 부모로부터 구박만 받는 다섯 살 소녀다. 아들이 아니라서 친오빠와 달리 차별 대우를 받고, TV를 보지 않고 쓸데없이 책만 본다고 매번 혼난다. 학교에서도 악당 트렌치불 교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당차고 “이건 옳지 않아요!”라고 분명하게 얘기할 줄 안다.

이 작품엔 스타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마틸다 역을 비롯해 실력 있는 아역 배우들이 주역이다.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아이들이다. 마틸다 역 경쟁률은 150 대 1에 달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는 마틸다의 연기와 춤, 노래는 더욱 생동하는 듯했다. 지난 15일 공연에 올랐던 마틸다 역의 아역 배우 이지나는 압도적인 분량의 대사를 빈틈없이 소화해내고 똑 부러지는 역할에 걸맞은 성량과 발음으로 노래했다.

같은 반 친구들 역할을 맡은 아역 앙상블도 훌륭했다. 익살스러운 감초 연기를 톡톡히 해냈으며 그네를 높은 곳에서 합을 맞추며 타고, 뜀틀을 구르는 등의 어려운 동작도 실수 없이 해냈다.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 ‘When I Grow Up’ ‘Revolting Children’과 열정적인 군무를 본 관객들은 탄성을 쏟아냈다.

어른 연기자들도 힘을 실어줬다. 특히 트런치불 교장 역을 맡은 김우형은 마틸다를 압도하지 않고 그의 호흡에 맞춰 가며 적절한 긴장과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알파벳 무대, ‘이야기 속의 이야기’까지

무대와 스토리는 작품 수준을 더욱 끌어올렸다. 마틸다가 책을 좋아하는 만큼 무대엔 알파벳 디자인이 자주 등장한다. 알파벳으로 된 ‘School Song’ 넘버가 흐를 때면 알파벳이 적힌 작은 큐브에 차례로 불이 들어온다. 책이 가득한 도서관도 마틸다의 상상력이 싹트는 공간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독특한 액자식 구성으로 지루할 틈도 없었다. 마틸다가 도서관의 펠프스 사서에게 재밌는 동화를 들려주면 한쪽에선 상상 속 이야기가 또 펼쳐진다. 이 동화엔 곡예사 부부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데, 이후 마틸다의 현실과 합쳐지며 색다른 즐거움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렇게 완성도를 높여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뮤지컬업계 관계자들은 최근의 뮤지컬 정체기를 맞아 관객 확장에 고심하고 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뮤지컬은 미래 잠재 고객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 조부모까지 전 세대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에서 탄생한 마틸다는 앞으로 뮤지컬 시장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다만 가사 전달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아역 앙상블이 함께 넘버를 부를 때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공연은 내년 2월10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