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맥스 연구원들이 경기 판교 본사 연구소에서 향 실험을 하고 있다. /코스맥스 제공
코스맥스 연구원들이 경기 판교 본사 연구소에서 향 실험을 하고 있다. /코스맥스 제공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전문회사 코스맥스가 한국 전통의 향을 개발한다. 화장품으로 일으킨 ‘K뷰티’ 열풍을 향기까지 확산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 전통 ‘향’ 재현

코스맥스는 지난 7월 화장품업계 최초로 국내 재래종 오얏꽃 향료 조성물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다. 오얏은 자두의 순우리말로 오얏꽃은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동안 화장품에 사용된 오얏꽃 향료는 향이 강한 외래 개량종 자두나무 꽃을 원료로 만들었다. 코스맥스는 한국산 재래종 오얏나무 꽃에서 향기를 포집했다. 꽃을 채집해 향료를 추출한 것이 아니라 꽃 주변 공기를 가져와 분석한 뒤 화학적 합성을 통해 향기를 제조했다. 홍연주 코스맥스 향료랩장은 “꽃나무를 보호하고 향에 담긴 상징성과 역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오얏꽃 만개 시기인 4월 한 고택에서 향기를 채취했다”며 “기존의 향과 다른 청초하고 깨끗한 한국 고유의 향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오얏꽃 향료 특허는 코스맥스가 2016년부터 시작한 ‘헤리티지 프레그런스 프로젝트’의 성과다. 선조들에게 사랑받았거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 전통의 향기를 기술로 승화시키자는 이경수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코스맥스는 이를 향기(scent)와 유산(heritage)의 합성어인 ‘센터리티지(scenteritage)’라 이름 짓고 본격적으로 향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K뷰티가 성공한 만큼 한국적 향도 글로벌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2년 동안 전국 돌며 발굴

소재는 사회문화적 보존 가치를 지닌 재래종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향이나 한국의 역사 속에서 특별하고 유일한 향기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5명의 향료랩 연구원이 2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역사적인 스토리를 담은 향을 발굴했다.

코스맥스는 오얏꽃을 시작으로 안동 서원의 배롱나무 꽃, 강릉 여류 문인의 매화나무 꽃, 홍성 조선 문신의 오동나무 꽃, 충북 전통 먹장인의 송연먹향 등 5가지 향을 만들었다. 연내 세 가지를 추가로 제작해 총 8가지 한국의 향을 완성할 예정이다. 개발한 향은 글로벌 화장품 회사 브랜드에 소개해 상품화할 계획이다. 향수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산할 화장품, 샤워코롱, 디퓨저 등 다양한 제품에 센터리티지 기술을 적용하고 새로 개발한 향료를 활용한다. 박명삼 코스맥스 R&I센터 원장은 “센터리티지 기술은 향기 소재를 선택하고 조향하는 과정에서 국가별 법규까지 유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 완성도 높은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며 “특별한 스토리를 담은 향을 원하는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사업과 시너지 기대

업계에선 코스맥스가 부가가치가 큰 향기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맥스는 2016년 YG엔터테인먼트 코스메틱 브랜드 문샷(moonshot)과 협업해 가수 GD의 이름을 딴 ‘지디 오 드 뚜왈렛’을 출시해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 GD 향수는 하루 매출 1억원을 달성하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가 장악한 향수시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대중적인 향이 아니라 소수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코스맥스가 한국 전통의 향을 개발한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개발에서 제형, 용기, 디자인에 더해 향이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화장품 외에 고급 호텔이나 미술관의 방향제 등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