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 이야기할까요?
인공지능(AI) 비서 ‘구글 듀플렉스’가 음식점에 전화를 건다. ‘주인님’의 지시대로 다음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네 사람이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식당 주인이 딴 데 신경을 쓰는지 계속 대화에 집중하지 않지만 구글 듀플렉스는 적절히 그리고 우아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최종적으로 수요일 오후엔 다섯 사람 이하는 예약 없이 와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은 뒤 멋진 인사를 던지고 전화를 마친다. 어느 누구도 이 대화가 AI와 사람 간 이뤄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통화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AI가 실생활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처럼 AI가 인간과 생존을 위해 경쟁하거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처럼 AI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될까? 아니면 참을성 있고 상냥한 AI에 빠진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AI와의 관계에만 몰두하는 세상이 될까?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는 아니다.

AI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맥에 맞는 적절한 대화를 이어 가는 것은 내가 상상하는 AI의 정수다. 복잡한 언어체계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계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인간과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바벨탑을 쌓아 신의 경지에 닿으려는 오만한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 서로 간의 언어를 달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AI에 부여하고자 하는 이 엄청난 능력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존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바벨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서 소통 부재로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시켜주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 의료는 너무나 전문화·분절화돼 있어 의료진과 환자 간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의료진은 많은 시간을 환자 상태를 요약해 전산차트에 기록하는 데 사용한다. 잘 기록해 놓은 의무 기록은 환자 변화를 감지해 최선의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한 이 과정으로 인해 치료과정에 필수적인 환자와의 소통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AI가 의사와 함께 환자 진료에 참여해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서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해 기록해준다면 어떨까. 시간에 쫓겨 환자가 오래 답변해야 하는 질문을 할까 걱정하는 대신,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우리, 이야기할까요?”라는 말을 건넬 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