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현 회장은 정확하게 47일 만에 다시 북한 땅을 밟게 됐다.
지난달 3일 금강산에서 열린 정몽헌 전 회장 15주기 추모식 이후 연이은 방북이다. 함께 평양으로 떠난 다른 총수들에게 대북사업은 미래의 일이지만, 현 회장에게는 '현재진행형' 숙원사업이다.
현대그룹 대북사업은 20년 전인 1998년 6월 16일 고(故) 정주영 그룹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으로 들어가면서 물꼬가 트였다.
역사적인 '소 떼 방북' 이후 현대그룹은 같은 해 11월 금강산관광 사업을 시작했고, 2003년 개성공단 개발로 본격적인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펼쳐나갔다.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인 2000년 8월에는 현대아산이 북한으로부터 전력사업,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관광사업 등 7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최소 30년간 운영할 권리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SOC 사업은 사업권을 얻어낸 지 18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정치·외교적 문제로 외풍을 타며 제대로 된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 이후 중단됐고,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인 2016년 2월에는 남북관계 경색 속에 개성공단 가동마저 전면 중단됐다.
시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첫 삽을 뜨고 남편 고(故) 정몽헌 회장이 기반을 닦은 대북사업을 이어받은 만큼 현 회장이 느끼는 책임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탄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사업재개를 향한 현 회장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됐다.
현 회장은 지난달 정 전 회장의 추모식에 참석한 뒤 돌아오는 길에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올해 안으로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만일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향후 북미정상회담을 거쳐 국내 기업들에 대북사업의 활로가 열릴 경우, 당장에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그룹이 현대라는 데는 재계의 이견이 거의 없다.
현대그룹에 대한 북한 측 신뢰가 쌓였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당장 지난달 정 전 회장의 추모식 때도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맹경일 부위원장을 통해 '아태는 현대에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고 현대가 앞장서 남북 사이의 사업을 주도하면 아태는 언제나 현대와 함께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사업 특성상 정치·외교적 여건이 무르익지 않는 한 사업이 전개될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다.
현재로서는 정부에서조차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제재로 인해 경협의 한계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방안보다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논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