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사진)은 부침이 심한 금융투자업계에서 2007년 3월부터 12년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업이 CEO’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IB부문 역량 강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승부사
그러나 유 사장이 이끄는 ‘한국투자증권호(號)’는 인수합병(M&A) 실패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5년 12월 한국투자금융지주는 당시 업계 1위이던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인수전에서 미래에셋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곧이어 펼쳐진 2016년 3월 현대증권(현 KB증권) 인수전에선 아쉽게 KB금융에 밀렸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증권사들이 잇달아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연속 M&A에서 고배를 마시자 임직원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 유 사장이 내세운 화두는 ‘하늘을 이고 땅 위에 선다’는 의미의 ‘정천입지(頂天立地)’였다. 잇단 M&A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임직원들에게 “홀로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당당한 기개를 가지라”고 주문했다. 평소 “한국투자증권은 대기업 그룹이나 은행계 금융지주에 속해 있지 않아 비빌 언덕이 없으니 ‘배수의 진’을 친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역설해온 유 사장다운 발상이었다.

비장의 무기는 IB였다.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부터 IB그룹 신설 등 대규모 조직 개편을 하면서 IB 역량 강화에 공을 들였다. 유 사장은 “업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경쟁사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먼저 IB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해 한국투자증권 IB부문은 역대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두산밥캣 등의 상장을 대표주관하는 등 시장을 ‘싹쓸이’하며 기세를 한껏 올렸다.

초대형 IB에서도 한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경쟁사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았다.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로 꼽히는 발행어음 상품 운용을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은 IB부문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대형 증권사 중 가장 높은 12.2%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기록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