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성장동력 회복이 집값 안정 해법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부동산 가격 안정에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 의지를 반영하듯 많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9·13 대책’이 여덟 번째였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하면서도 부동산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인 저금리 정책에는 침묵했고 오히려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경기 위축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 와서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를 한국은행 탓으로 돌리며 금리 인상을 종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리 인상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부동산 문제를 모두 한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부동산 문제가 지금에 이르게 된 데에는 정부 책임이 더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했다. 저금리로 풀린 돈이 생산적인 투자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면서 금리는 서서히 인상하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는 달리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양산했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는 조치만을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조절이라는 수단만 가지고 있는 한은으로서는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물론 현 정부가 금리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과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내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저금리가 유리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쉽사리 올리지 못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째 동결돼 있다. 한은이 저금리에 따른 과잉유동성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위축이 걱정이고 가계부채 부실과 서민의 금리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정부가 성장 동력을 훼손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기 회복을 저금리에 기대온 결과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장 동력이 회복되도록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수많은 규제를 완화해야 하고, 반(反)시장적인 정책을 폐지해야 하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부동자금은 자연히 기업의 투자 쪽으로 흘러들어갈 것이고, 한은도 금리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금리를 서서히 올리면 과잉유동성이 흡수될 것이다.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등과 같은 수요억제 정책보다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병행하면 부동산 문제는 차츰 안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이 정치 이념에 사로잡힌 정책을 고수하면서 수요억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쓰면 부동산 문제는 잡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회복과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부동산 수요억제 정책을 쓰면 일시적으로는 부동산시장이 잠잠해지겠지만 부동자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다시 불거져 나타난다. 아니면 다른 자산시장으로 부동자금이 몰려 그 시장에서의 폭등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서민들의 금리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기업 활동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수행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 가계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높아진다.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높아지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은 자연히 완화된다.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불평등 문제도 많이 완화될 것이다. 지금 소득불평등이 악화된 것은 성장이 둔화돼 일자리가 많이 사라져 비숙련 노동자와 소규모 자영업자 소득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활동을 촉진하는 조치들로 기업 활동이 살아나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불평등 문제는 상당히 개선된다.

정부가 성장 동력을 회복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리면 지금의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 경기 위축, 일자리 부진, 소득분배 악화 등 다양한 경제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며 한은을 압박해 금리만 인상하고, 부동산 투기자들을 처벌한다는 식의 정책은 경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