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골퍼, 내년부터 벌타 받는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신한동해오픈 1라운드에서 박상현(35)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8번 홀(파4)에서 페어웨이 오른쪽 벙커에 빠진 볼이 발자국 속에 묻혀 있었다.

프로 대회에서 벙커에 발자국이 남는 것은 좀체 드문 일이다.

벙커에서 빠져나올 때는 발자국이나 클럽이 지나간 자리는 말끔하게 정리하는 게 기본 에티켓이다.

그렇다면 이런 에티켓을 어기면 어떤 벌을 받을까.

코리안투어는 벙커를 정리하지 않은 선수에게는 100만 원의 벌금을 매긴다.

원래는 30만 원이었는데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선수회 건의에 따라 벌금을 대폭 올렸다.

하지만 이렇게 동료 선수를 배려하지 않는 매너 없는 행위를 저질러도 스코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골프 규칙에 에티켓 위반에는 벌타를 줄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비신사적 행동을 여러 차례 저질러도 좋은 스코어로 우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A 선수는 1라운드가 끝나고 실격 처분을 받았다.

그린에서 짧은 퍼트를 놓친 뒤 분한 마음에 퍼터로 그린을 내리친 사실이 드러나서였다.

뒤따르던 선수가 그린이 살짝 패인 걸 경기위원에게 신고해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

그린을 내리찍는 행동은 에티켓에 어긋나지만, 실격은 과한 처분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심각한 에티켓 위반에는 실격 말고는 달리 경종을 울리기 위한 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경기위원회는 실격 처분을 강행했다.

이 사안을 놓고 한 경기위원은 "실격은 좀 가혹했다.

딱 2벌타 정도의 벌칙이 적당한 것 같다"면서도 "에티켓 위반에 벌타를 주는 규정이 없으니…"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내년부터 에티켓을 어긴 선수에게 벌타를 매길 길이 열린다.

전 세계에 적용되는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내년부터 적용할 개정 규칙에 경기위원회가 에티켓 위반에 대해 벌타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렇게 되면 골프 대회 경기위원회는 사전에 특정 에티켓 위반 행위에는 벌타를 준다는 로컬룰을 제정해 운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퍼트를 비롯한 클럽으로 그린을 훼손하면 1벌타'나 '벙커 정리를 않고 다음 홀로 이동하면 1벌타' 등의 로컬룰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벌타를 매기는 에티켓 위반 대상은 경기위원회 재량에 맡긴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에티켓 위반도 경기위원회가 벌타를 주겠다고 미리 정한다면 벌타를 받게 된다.

코리안투어의 한 경기위원은 "선수와 캐디가 큰 소리로 말다툼을 벌인다거나, 갤러리에게 욕설하는 행동에도 벌타를 줄 수 있다"면서 "이제는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스코어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안투어와 KLPGA투어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벌타 부과 대상이 되는 에티켓 위반 행위를 정할 방침이다.

에티켓 위반에 벌타를 주는 게 오히려 선수에게 유리하다는 이견도 있다.

지금은 경기 중 에티켓을 어긴 선수는 실격을 당하거나 나중에 상벌위원회에 넘겨져 벌금이나 출장 정지 같은 징계를 받는다.

새로운 규정이 시행되면 선수들도 이런 과도한 징벌 대신 벌타만 받고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