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뿐 아니라 인조 때 이괄의 난, 순조 때 대화재 등으로 여러 번의 화재를 겪고 재건을 거듭했던 창경궁이 가장 큰 시련을 맞은 것은 역시 일제시대 때였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거처를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이 일을 계기로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꿔 왕권을 격하시켰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는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했고 지금의 율곡로를 개설해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했다.
1970년대까지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로 각광받던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공사는 1984년 시작됐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겼고 일본이 심어놨던 벚나무도 뽑았다. 1986년에는 명정전 회랑과 문정전 등 일부 전각을 복원했다. 자경전 터의 박물관은 그 기능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넘겨준 뒤 1992년 헐리고 그 자리는 녹지가 됐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웅장하거나 화려하기보다 반듯하고 아담한 미를 자랑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