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성태 원내대표.  /연합뉴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성태 원내대표. /연합뉴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자신이 쥔 권한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인 ‘인적 청산’의 칼을 꺼내들었다. 공천과 직결된 당원협의회 위원장 전원에게 사퇴서를 받은 뒤 백지상태에서 새로 임명하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다. “가치 정립이 먼저”라며 인적 구조조정을 미뤄온 김 위원장이 최고 수위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한국당 비대위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당협위원장 전원이 다음달 1일자로 일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대상은 전국 총선 지역구 단위인 253개 당협 중 위원장이 공석인 지역 22곳을 제외한 231명 위원장이다. 현역 국회의원도 모두 포함된다는 의미다. 당협위원장 일괄 사퇴가 마무리되는 대로 곧바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전국 당협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부의 반발이 당연히 없을 수 없겠지만, 당이 비상사태라는 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라며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에서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협위원장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머쥐어야 하는 자리다. 총선을 불과 1년 반가량 앞둔 시점에 당협위원장 자리를 박탈당할 경우 현역의원도 차기 공천에서 탈락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당협위원장 교체 등) 여러 혁신안을 사실상 12월 말까지 완료해 내년 2월께 전당대회를 치를 수 있게 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김 위원장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당내에서는 당협위원장 전원 사퇴 카드가 분위기 쇄신용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전날 열린 비대위 및 중진의원 연석회의 때도 언질이 없었다”며 “총선 공천권이 없는 김 위원장이 사실상 미리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른 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 세력을 따랐던 위원장들을 김 위원장이 정리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논란이 일자 저녁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그는 “단순히 인적쇄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당협 운영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그 의미가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비대위가 지닌 시간적 제약이 있어 일괄사퇴라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 뿐”이라며 “새 정당을 만들기 위한 고통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