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규제 하나 푸는 게 이렇게 어렵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규제) 완화 특례법 처리가 그랬다. 여야 3당이 여권 내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을 통과시켰지만, 어제 본회의가 늦춰지는 등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은산분리 완화는 인터넷은행의 비금융자본(산업자본) 지분 한도를 최대 34%(현행 4%)로 확대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의 융·복합을 통한 핀테크로 금융혁신 경쟁이 한창인데, 국내에선 인터넷은행조차 지분 족쇄에 묶여 투자도 못 한 채 ‘메기’가 아닌 ‘미꾸라지’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층의 ‘공약 파기’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규제혁신 1호 법안’으로 지목했던 이유다.

하지만 특례법을 들여다보면 과연 제대로 된 규제혁신인지 의심스럽다. 구체적 허용 기준은 시행령에 정해지겠지만, 인터넷은행의 대주주에 총수 있는 재벌을 배제하고, IT 자산비중이 높은 기업에만 예외를 허용한다는 게 법의 기본원칙이다. 이렇게 되면 제3, 제4 인터넷은행 진출이 가능한 대기업은 포스코 네이버 인터파크 등과 게임회사 정도만 남게 된다. 분명히 ‘포장’은 규제완화인데 내용물은 또 다른 진입장벽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반쪽 입법’조차 여권 일각과 시민단체들은 “재벌 사금고화로 큰 재앙을 몰고올 것”이라며 반대했다. 과거처럼 만성 자금부족 시기도 아니고, 은행들이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줄을 서는 판국에 해묵은 논리로 일관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재벌 곳간에 사내유보금 수백조원이 쌓여 있다”는 주장부터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나. 정녕 재벌 사금고화가 걱정이면 대주주에 대한 대출 규제, 주식취득 금지 등 사후 감독으로 얼마든지 봉쇄할 수 있다.

은산분리 완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정부에서 규제혁신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지 통감하게 된다. 앞으로 빅데이터 활용, 원격진료 등을 막는 덩어리 규제는 어떻게 풀지 암담하다. 혁신성장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고 더 과감한 규제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