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파스칼 트리쿠아 "에너지 효율화가 4차 산업혁명 성패 가른다"
“한국은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장 파스칼 트리쿠아 슈나이더 일렉트릭 회장(55·사진)은 지난 20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이노베이션 서밋’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리쿠아 회장의 진단은 정부가 같은 날 발표한 ‘에너지 총조사(2016년 기준)’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3% 증가했다. 수송과 가정, 상업을 포함한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9.4%에서 60.4%로 높아졌다.

장 파스칼 트리쿠아 "에너지 효율화가 4차 산업혁명 성패 가른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빌딩과 공장, 집 등의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250억유로(약 32조원)에 달한다. 트리쿠아 회장은 1986년 이 회사에 입사해 2013년부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슈나이더는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에너지 효율성과 생산성, 안전성을 높이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열었다.

트리쿠아 회장은 에너지를 ‘생산’이 아니라 ‘효율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도 원자력과 화력발전 등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저렴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 방법”이라며 “현재의 효율화 기술로도 각 건물 에너지 소비의 30%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데이터센터와 병원, 공장 등을 중심으로 슈나이더의 ‘에코스트럭처’ 솔루션 도입이 늘고 있다. 에코스트럭처는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해 에너지 관리와 전산장비 및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슈나이더의 기술 플랫폼이다. 부산은행 데이터센터와 포장기계 생산업체인 흥아기연, 내년 개원 예정인 서울 은평성모병원 등이 슈나이더의 고객사다.

트리쿠아 회장은 전력의 효율적인 관리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기차 등의 등장으로 전기 소비량은 2040년까지 지금보다 30%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IoT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이 빌딩 및 공장 관리에 적용되면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생산성과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 부하가 많은 데이터센터 등에 있는 기기들의 온도를 감지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쿨링 시스템’은 화재를 예방한다. 병원에서도 응급의료기기 등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1836년 철강업체로 설립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1891년 전기시장에 진출했다. 1975년 배전 기업을 인수한 뒤에는 관련 사업에 주력하다가 2000년대 들어 빌딩 자동화 사업 등에 뛰어들었다. 트리쿠아 회장은 창립 182년을 맞은 장수 기업의 비결을 혁신에서 찾았다. 그는 “전기와 4차 산업혁명 등 세상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해온 점이 슈나이더를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