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 넘은 사모 롱쇼트펀드… 증시 박스권에 가두나
비슷한 주가 흐름을 보이는 종목을 짝지어 저평가된 종목은 사고(롱), 고평가된 종목은 팔아(쇼트) 안정적 수익을 내는 것을 추구하는 사모 롱쇼트펀드 설정액이 10조원을 넘어섰다.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금리인상 등의 여파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연 5~10% 수준의 수익에 만족하는 투자자가 몰린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2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 가운데 롱쇼트 전략을 구사하는 878개 펀드의 지난달 말 기준 설정액은 11조419억원으로, 전달(9조1651억원)보다 20.47% 증가했다. 사모 롱쇼트펀드의 설정액이 1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말 3조6817억원에 불과했던 사모 롱쇼트펀드 설정액은 이후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1622개의 전체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23조811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37%에 달한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설정액 증가율은 66.26%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연말까지 지난해 증가율(80.38%)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롱쇼트펀드가 인기를 끄는 건 글로벌 증시가 올해 내내 출렁거리는 와중에도 꾸준히 플러스 수익을 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상당수 펀드가 실제로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전통적 형태의 롱쇼트 전략을 구사하는 한국형 헤지펀드 중 빌리언폴드자산운용의 ‘Billion Beat’ 시리즈는 연초 이후 지난 14일까지 7.65~8.69%의 수익률을 올렸다.

수익률이 다소 떨어지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접목한 펀드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벤트 드리븐’ 전략(인수합병, 지배구조 개편 등 이벤트가 있는 종목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는 운용 방식)을 섞은 밸류시스템운용의 ‘소나무’(12.89%)와 ‘백록담’(7.00%) 등이 양호한 성과를 냈다.

하반기 들어 코스피지수는 2210~2340의 좁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외 악재에 기업 실적개선 둔화, 내수경기 악화가 더해져 한국 증시의 매력이 떨어진 게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사모 롱쇼트펀드의 ‘덩치’가 급격히 커진 것도 수급 측면에서 박스권 장세를 심화시키는 데 한몫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짝짓기 운용(페어 트레이딩)’에 묶인 종목들의 경우 상승할 만하면 롱쇼트 펀드의 공매도 물량이 나와 약세로 돌아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롱쇼트 펀드 운용회사들은 같은 업종 내에서 비슷한 사업 구조를 지닌 종목을 짝지은 뒤 고평가됐다고 판단되는 종목은 공매도하고, 저평가됐다고 분석되는 종목은 사는 방식으로 펀드를 운용한다. 반도체업종의 삼성전자 혹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미국), 정유업종의 SK이노베이션(한국)과 발레로(미국), 철강업종의 포스코와 신닛테쓰스미킨(일본) 등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등을 분석해 사고파는 식이다.

하반기 들어 삼성전자는 4만3000~4만9000원, SK이노베이션은 18만2000~20만4000원, 포스코는 28만9000~33만4000원 박스권에 갇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