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이전에 연구원 985명 이탈… 국책 연구기관 인재유출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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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국감자료 - 추경호 의원 '27개 연구기관 이직 현황' 공개
3년 6개월 새 연구원 21% 떠나
올해도 상반기에만 124명 이직
"우수인력 채용도 어렵다" 하소연
與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강행 땐
핵심인력 유출 되풀이될 듯
3년 6개월 새 연구원 21% 떠나
올해도 상반기에만 124명 이직
"우수인력 채용도 어렵다" 하소연
與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강행 땐
핵심인력 유출 되풀이될 듯
국책 연구원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11년 동안 몸담은 A연구위원은 작년 하반기 경기 의정부에 있는 S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충북 진천으로 옮겨간 지난해 2월부터 6개월 동안 매일 네 시간 이상 서울과 진천을 출퇴근하다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한국교육개발원 관계자는 “작년에만 정규직 연구원 10명(8.7%)이 그만두는 등 경험과 연륜 있는 연구인력 유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직장으로 대거 이직
정부가 지방 이전을 지시한 국책 연구기관이 석·박사급 핵심 연구인력의 잇단 퇴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26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책 연구기관 연구직 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7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직 퇴사자(비정규직 포함)는 243명(5.2%)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도 상반기에만 124명(2.9%)의 연구원이 옷을 벗었다. 2015년 이후 그만둔 연구원은 985명으로 전체 연구직(4600명·작년 말 기준)의 21.4%에 달한다. 최근 3년 반 동안 국가 중요 정책을 수립하고 이론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국책 연구원의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다.
연구직 직원들은 기관의 지방 이전 전후 퇴사율이 높았다. 국내 교육정책 싱크탱크인 한국교육개발원은 진천으로 이전한 작년에만 정규직 연구원 10명(8.7%)이 그만뒀다. 3명의 정규직 연구원이 그만둔 전년과 비교해 3배를 넘었다. 10명 모두 박사 출신이다. 이 중엔 20년 이상 된 선임연구위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2월 같은 지역으로 옮긴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연구직 17명(4.6%)이 퇴사했다. 이 중 박사급 연구원이 10명에 달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선임연구원을 제외한 이들의 연봉은 6000만~7000만원 수준으로 대학 및 민간 연구소보다 적어 붙잡을 방법이 없다”며 “앞으로 우수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책의 질 부실 우려
석·박사급 인력 이탈엔 국책 연구기관의 지방 이전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7개 연구원 중 22개는 2013년부터 올해 2월까지 세종시와 진천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사자가 늘어날 뿐 아니라 우수 인력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용 과정을 통해 연구원을 모집해도 근무 시작 직전 ‘입사 포기’를 통보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교육개발원 등은 고급 두뇌들이 선망하는 최고 직장이었다. 정부는 해외 유학파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아파트와 자동차 등을 제공하고 연봉도 파격적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 같은 대우는커녕 강제 지방 이주 부담 때문에 국책 연구원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학교수나 민간 연구원보다도 위상이 낮아진 이유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언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면 ‘인재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2007년 이후 설립된 60개 공공기관 중 지방 이전이 가능한 곳을 분류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인력 유출 및 기관 반발이 일부 예상되지만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선 더 유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추 의원은 “젊은 연구자 사이에선 지방에 있는 국책연구원을 가느니 서울에 있는 민간 연구원이나 대학에 가겠다는 의견이 많다”며 “여당이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면 인재 유출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국가 정책을 맡아온 국책 연구원의 연구 기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정책 연구의 연속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딴 연구자에게 정책 수립, 정부와의 협업 등을 가르치려면 2~3년 이상 걸린다.
최근엔 국책 연구원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연구원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직이 쉬워진 국책 연구원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은 갓 박사학위를 딴 젊은 연구원의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국장급 관료는 “자료를 보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내놓는 일이 많고 실제 정책과 연결되기도 쉽지 않다”며 “정부 정책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수도권 직장으로 대거 이직
정부가 지방 이전을 지시한 국책 연구기관이 석·박사급 핵심 연구인력의 잇단 퇴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26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책 연구기관 연구직 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7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직 퇴사자(비정규직 포함)는 243명(5.2%)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도 상반기에만 124명(2.9%)의 연구원이 옷을 벗었다. 2015년 이후 그만둔 연구원은 985명으로 전체 연구직(4600명·작년 말 기준)의 21.4%에 달한다. 최근 3년 반 동안 국가 중요 정책을 수립하고 이론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국책 연구원의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다.
연구직 직원들은 기관의 지방 이전 전후 퇴사율이 높았다. 국내 교육정책 싱크탱크인 한국교육개발원은 진천으로 이전한 작년에만 정규직 연구원 10명(8.7%)이 그만뒀다. 3명의 정규직 연구원이 그만둔 전년과 비교해 3배를 넘었다. 10명 모두 박사 출신이다. 이 중엔 20년 이상 된 선임연구위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2월 같은 지역으로 옮긴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연구직 17명(4.6%)이 퇴사했다. 이 중 박사급 연구원이 10명에 달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선임연구원을 제외한 이들의 연봉은 6000만~7000만원 수준으로 대학 및 민간 연구소보다 적어 붙잡을 방법이 없다”며 “앞으로 우수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책의 질 부실 우려
석·박사급 인력 이탈엔 국책 연구기관의 지방 이전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7개 연구원 중 22개는 2013년부터 올해 2월까지 세종시와 진천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퇴사자가 늘어날 뿐 아니라 우수 인력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용 과정을 통해 연구원을 모집해도 근무 시작 직전 ‘입사 포기’를 통보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교육개발원 등은 고급 두뇌들이 선망하는 최고 직장이었다. 정부는 해외 유학파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아파트와 자동차 등을 제공하고 연봉도 파격적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 같은 대우는커녕 강제 지방 이주 부담 때문에 국책 연구원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학교수나 민간 연구원보다도 위상이 낮아진 이유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언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면 ‘인재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2007년 이후 설립된 60개 공공기관 중 지방 이전이 가능한 곳을 분류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인력 유출 및 기관 반발이 일부 예상되지만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선 더 유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추 의원은 “젊은 연구자 사이에선 지방에 있는 국책연구원을 가느니 서울에 있는 민간 연구원이나 대학에 가겠다는 의견이 많다”며 “여당이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면 인재 유출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국가 정책을 맡아온 국책 연구원의 연구 기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정책 연구의 연속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딴 연구자에게 정책 수립, 정부와의 협업 등을 가르치려면 2~3년 이상 걸린다.
최근엔 국책 연구원을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연구원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직이 쉬워진 국책 연구원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은 갓 박사학위를 딴 젊은 연구원의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국장급 관료는 “자료를 보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내놓는 일이 많고 실제 정책과 연결되기도 쉽지 않다”며 “정부 정책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