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부주도성장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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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의 실체는 청와대주도성장
앞뒤 바뀐 논리에다 이념에 치우친 정책뿐
방향을 틀어 시장친화적 방법으로 풀어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 前 금융투자협회장 >
앞뒤 바뀐 논리에다 이념에 치우친 정책뿐
방향을 틀어 시장친화적 방법으로 풀어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 前 금융투자협회장 >
세계에 유례없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놓고 온 나라가 난리다.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론은 맞는데 집행이 잘못됐다는 것이고, 셋째는 이론과 집행에는 문제가 없는데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론부터 살펴보자.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한다? 그렇다 치자. 소득은 어떻게 늘어나는가. 나랏돈을 거저 나눠 주지 않는 한(이전소득), 일을 해서 벌든가(근로소득), 회사를 운영해서 벌든가(사업소득), 가진 재산에서 수익이 나든가(재산소득), 이런 일들을 전보다 잘해야 소득이 늘어난다. 이전소득과 재산소득이 늘어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수반되므로 논의에서 제외하면, 결국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늘어야 소득주도성장이 가능해진다.
그럼 근로소득은 어떻게 늘어나나. 우선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생산성이 높아져서 급여가 올라야 한다. 그리고 사업소득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원가보다 높은 값에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내야 한다. 그것도 전년보다 더 많은 이익을 말이다. 결국 일자리, 기업, 생산성 이 세 가지가 소득을 증가시키는 원천임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소득이 성장을 주도한다고? 마차를 말 앞에 두고 말보고 어서 가자고 채찍질하는 꼴이다.
둘째, 집행은 어떤가. 잘못된 이론을 밀어붙이려니 일이 잘될 리 없다. 최저임금을 주는 것은 주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인데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제로화같이 기업에 부담 주는 조치를 개구리 죽는 줄 모르고 연못에 장난삼아 돌을 던지듯 한다. 민간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아니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느닷없이 삼성이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고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10대 그룹이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한 언론이 집계한 금액이 향후 5년 내 투자 421조원, 고용 26만 명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에 있는 사람은 대기업과 부자가 잘살게 되면서 분배가 불공평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기업이 더 잘되면 어쩌려고 이런 투자를 ‘방치’한다는 말인가. 대기업은 필요상 발표는 했지만 아마도 정부의 규제개혁과 노동계의 전투력을 가늠해가면서 투자와 고용을 신중히 집행할 것이고, 정책당국은 ‘큰 거 한 건’ 한 것으로 끝날 것이다.
셋째,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는 금년 말, 누구는 내년 말이면 좋아진다고 했다. 잘못된 길을 멀리 가면 돌아올 때 고생한다. 그런데 잘못된 길로 더 빨리 내달리고 있다. 주류경제학자들과 대기업옹호론자들의 비판이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앞만 보고 속도를 내고 있다. 만일 이 길의 끝에 경제적 참사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득주도성장론의 실체가 이토록 허술하고 불안하기에, 야당에서는 출산주도성장이다 국민주도성장이다 해서 대안을 내놓으려 애쓰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대안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정체는 넓게 말해서 정부주도성장론이고, 좁게 말해서 청와대주도성장론이다. 일자리도 임금도 투자도 모두 ‘분노하는’ 청와대가 끌고 나가고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이를 뒷받침하니 청와대주도성장전략과 다름없다.
해답은 시장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보다 우월한 체제라는 것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문제라면 고용주는 생산성에 맞는 시장임금을 주고 부족분은 정부가 보조금으로 메워 주는 식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문제도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절대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장은 정부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영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길로 너무 멀리 가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부주도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이론부터 살펴보자.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한다? 그렇다 치자. 소득은 어떻게 늘어나는가. 나랏돈을 거저 나눠 주지 않는 한(이전소득), 일을 해서 벌든가(근로소득), 회사를 운영해서 벌든가(사업소득), 가진 재산에서 수익이 나든가(재산소득), 이런 일들을 전보다 잘해야 소득이 늘어난다. 이전소득과 재산소득이 늘어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수반되므로 논의에서 제외하면, 결국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 늘어야 소득주도성장이 가능해진다.
그럼 근로소득은 어떻게 늘어나나. 우선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생산성이 높아져서 급여가 올라야 한다. 그리고 사업소득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원가보다 높은 값에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내야 한다. 그것도 전년보다 더 많은 이익을 말이다. 결국 일자리, 기업, 생산성 이 세 가지가 소득을 증가시키는 원천임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소득이 성장을 주도한다고? 마차를 말 앞에 두고 말보고 어서 가자고 채찍질하는 꼴이다.
둘째, 집행은 어떤가. 잘못된 이론을 밀어붙이려니 일이 잘될 리 없다. 최저임금을 주는 것은 주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인데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제로화같이 기업에 부담 주는 조치를 개구리 죽는 줄 모르고 연못에 장난삼아 돌을 던지듯 한다. 민간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아니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느닷없이 삼성이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고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10대 그룹이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한 언론이 집계한 금액이 향후 5년 내 투자 421조원, 고용 26만 명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에 있는 사람은 대기업과 부자가 잘살게 되면서 분배가 불공평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기업이 더 잘되면 어쩌려고 이런 투자를 ‘방치’한다는 말인가. 대기업은 필요상 발표는 했지만 아마도 정부의 규제개혁과 노동계의 전투력을 가늠해가면서 투자와 고용을 신중히 집행할 것이고, 정책당국은 ‘큰 거 한 건’ 한 것으로 끝날 것이다.
셋째,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는 금년 말, 누구는 내년 말이면 좋아진다고 했다. 잘못된 길을 멀리 가면 돌아올 때 고생한다. 그런데 잘못된 길로 더 빨리 내달리고 있다. 주류경제학자들과 대기업옹호론자들의 비판이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앞만 보고 속도를 내고 있다. 만일 이 길의 끝에 경제적 참사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득주도성장론의 실체가 이토록 허술하고 불안하기에, 야당에서는 출산주도성장이다 국민주도성장이다 해서 대안을 내놓으려 애쓰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대안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정체는 넓게 말해서 정부주도성장론이고, 좁게 말해서 청와대주도성장론이다. 일자리도 임금도 투자도 모두 ‘분노하는’ 청와대가 끌고 나가고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이를 뒷받침하니 청와대주도성장전략과 다름없다.
해답은 시장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보다 우월한 체제라는 것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문제라면 고용주는 생산성에 맞는 시장임금을 주고 부족분은 정부가 보조금으로 메워 주는 식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문제도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절대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장은 정부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영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길로 너무 멀리 가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부주도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