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세계시장 선점할 기회를 정부가 규제로 막으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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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애플의 '심전도 워치'는 한국 기업이 먼저 개발했었다
애플이 지난달 12일 미국에서 스마트폰 신제품들과 스마트워치 ‘애플워치4’를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다양한 헬스케어 기능을 갖춘 ‘애플워치4’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을 받아 스마트워치로는 처음으로 심전도 측정 센서를 장착한 게 특징이다. 심전도는 심장 수축에 의한 활동전류 등을 파장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 심장이 정상 패턴으로 박동하는지를 알려준다. 국내 기업이 3년 전 심전도 스마트워치를 개발하고도 각종 규제 탓에 아직도 제품화를 못하는 상황과 대조된다.
애플의 혁신이 담겨있는 ‘애플워치4’는 미국 FDA의 강력한 규제개혁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FDA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에서 신약과 의료기기 심사가 가장 빠른 보건당국으로 탈바꿈했다. 기업이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자율적으로 의료기기를 검증하고 출시할 수 있게 했다. 기업이 ‘신속 승인’을 받으면 제품 출시를 최고 2~3년 앞당길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규제개혁을 통해 스마트 헬스케어를 신(新)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규제에 질식하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인 휴이노가 2015년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여전히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보건당국이 시계용으로 만든 심전도 측정기기의 평가 기준을 고전압에 견디는 병원용 심전도 기기 수준으로 요구해서다. 휴이노가 지난 7월 ‘민관합동 규제해결 끝장캠프’에서 하소연을 쏟아내자, 보건당국은 그제야 ‘신속 승인’을 약속했다. 승인을 받아도 글로벌 기업인 애플에 ‘최초’를 뺏긴 상황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도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신산업에서 제품의 적기(適期) 출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이 아닌 인허가에 막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제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는 ‘휴이노 사태’를 교훈 삼아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9월1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빅데이터·원격의료·유전자검사 등
정부의 각종 규제로 가시적 성과 못내
미국의 신속한 승인절차 교훈 삼아야
정보통신기술(ICT)에서의 기술변화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지대에서는 누가 적이고, 어디가 협력자인지 구별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분야 한국 기업의 명백한 적 가운데 하나가 규제다.
국가가 있고, 정부가 있는 한 규제가 완전히 없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국가권력의 본질이 규제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공동체의 선(善)과 사회 전체의 이익 증대를 위한 것이라고는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작을수록 선하다는 ‘작은 정부론’이 타당성을 갖는다. 최소한의 규제는 시장기능의 극대화, 기업가 정신의 고취, 개인의 창의 신장과 직결된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이 방향으로 가는 것도 그래서다.
최소한의 금지 및 제한 규정만 정해놓고 그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규제행정을 두고 네거티브(negative) 규제 시스템이라 한다. 반대로 법규로 명시된 가능한 것 외 모든 것이 부정·금지되는 방식을 포지티브(positive) 규제 시스템이라고 한다. 행정 분야나 법령 종류에 따라 여러 경우가 혼재하지만, 우리 행정은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방식이다. 새로 뭘 하려면 법적 가능 근거부터 찾아야 하는 식이다. 새로운 사업이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가의 감시·개입이 강하다는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 위주인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만 해도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시스템이 나오면 일단 시장에 내버려두고, 부작용이 문제될 경우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이 많다.
애플의 신제품 스마트워치에 탑재된 심전도 측정기능이 3년 전 한국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도 제품화를 못한 것은 겹겹이 중첩된 규제 때문이다. 융합 ICT 제품을 만들었으나 기존에 없는 형식의 상품이어서 인증을 못 받고 판매도 못한 것이다. 미국은 덩치가 큰 국가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의미있는 규제철폐가 단행됐다. 그 결과 식품의약국(FDA) 심사도 많이 빨라졌다. 신약과 의료기기 심사에서 규제를 걷어내면서 규제 기관이 서비스 기관으로 변한 것이다. 기업의 시장선점 기회를 정부당국이 가로막지 않는 것은 글로벌 경쟁이 강화되는 개방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정부와 행정의 경쟁력은 이런 데서 좌우된다.
한국에서는 주야장천 시범사업만 할 뿐 시장에서 교환이 안 되는 박제된 신기술도 적지 않다. 원격의료, 빅데이터, 유전자 검사 관련 사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완화를 외치기는 한다. 하지만 시장이 원하고, 사업화가 가능한 곳에서 가시적 성과를 못내는 경우가 있다. 사회단체나 이익집단들이 개입해 새기술과 신산업을 방해하는 것도 원인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눈치만 살피는 경우도 많다. 관련된 법을 만드는 국회까지 종종 이익집단에 포위돼 있다. 이런 판에 혁신성장이 가능할까.
huhws@hankyung.com
애플이 지난달 12일 미국에서 스마트폰 신제품들과 스마트워치 ‘애플워치4’를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다양한 헬스케어 기능을 갖춘 ‘애플워치4’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을 받아 스마트워치로는 처음으로 심전도 측정 센서를 장착한 게 특징이다. 심전도는 심장 수축에 의한 활동전류 등을 파장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 심장이 정상 패턴으로 박동하는지를 알려준다. 국내 기업이 3년 전 심전도 스마트워치를 개발하고도 각종 규제 탓에 아직도 제품화를 못하는 상황과 대조된다.
애플의 혁신이 담겨있는 ‘애플워치4’는 미국 FDA의 강력한 규제개혁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FDA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에서 신약과 의료기기 심사가 가장 빠른 보건당국으로 탈바꿈했다. 기업이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자율적으로 의료기기를 검증하고 출시할 수 있게 했다. 기업이 ‘신속 승인’을 받으면 제품 출시를 최고 2~3년 앞당길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규제개혁을 통해 스마트 헬스케어를 신(新)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겹겹이 둘러싸인 규제에 질식하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인 휴이노가 2015년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여전히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보건당국이 시계용으로 만든 심전도 측정기기의 평가 기준을 고전압에 견디는 병원용 심전도 기기 수준으로 요구해서다. 휴이노가 지난 7월 ‘민관합동 규제해결 끝장캠프’에서 하소연을 쏟아내자, 보건당국은 그제야 ‘신속 승인’을 약속했다. 승인을 받아도 글로벌 기업인 애플에 ‘최초’를 뺏긴 상황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도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신산업에서 제품의 적기(適期) 출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이 아닌 인허가에 막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제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는 ‘휴이노 사태’를 교훈 삼아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9월1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빅데이터·원격의료·유전자검사 등
정부의 각종 규제로 가시적 성과 못내
미국의 신속한 승인절차 교훈 삼아야
정보통신기술(ICT)에서의 기술변화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지대에서는 누가 적이고, 어디가 협력자인지 구별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분야 한국 기업의 명백한 적 가운데 하나가 규제다.
국가가 있고, 정부가 있는 한 규제가 완전히 없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국가권력의 본질이 규제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공동체의 선(善)과 사회 전체의 이익 증대를 위한 것이라고는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작을수록 선하다는 ‘작은 정부론’이 타당성을 갖는다. 최소한의 규제는 시장기능의 극대화, 기업가 정신의 고취, 개인의 창의 신장과 직결된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이 방향으로 가는 것도 그래서다.
최소한의 금지 및 제한 규정만 정해놓고 그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규제행정을 두고 네거티브(negative) 규제 시스템이라 한다. 반대로 법규로 명시된 가능한 것 외 모든 것이 부정·금지되는 방식을 포지티브(positive) 규제 시스템이라고 한다. 행정 분야나 법령 종류에 따라 여러 경우가 혼재하지만, 우리 행정은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방식이다. 새로 뭘 하려면 법적 가능 근거부터 찾아야 하는 식이다. 새로운 사업이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가의 감시·개입이 강하다는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 위주인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만 해도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시스템이 나오면 일단 시장에 내버려두고, 부작용이 문제될 경우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이 많다.
애플의 신제품 스마트워치에 탑재된 심전도 측정기능이 3년 전 한국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도 제품화를 못한 것은 겹겹이 중첩된 규제 때문이다. 융합 ICT 제품을 만들었으나 기존에 없는 형식의 상품이어서 인증을 못 받고 판매도 못한 것이다. 미국은 덩치가 큰 국가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의미있는 규제철폐가 단행됐다. 그 결과 식품의약국(FDA) 심사도 많이 빨라졌다. 신약과 의료기기 심사에서 규제를 걷어내면서 규제 기관이 서비스 기관으로 변한 것이다. 기업의 시장선점 기회를 정부당국이 가로막지 않는 것은 글로벌 경쟁이 강화되는 개방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정부와 행정의 경쟁력은 이런 데서 좌우된다.
한국에서는 주야장천 시범사업만 할 뿐 시장에서 교환이 안 되는 박제된 신기술도 적지 않다. 원격의료, 빅데이터, 유전자 검사 관련 사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완화를 외치기는 한다. 하지만 시장이 원하고, 사업화가 가능한 곳에서 가시적 성과를 못내는 경우가 있다. 사회단체나 이익집단들이 개입해 새기술과 신산업을 방해하는 것도 원인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눈치만 살피는 경우도 많다. 관련된 법을 만드는 국회까지 종종 이익집단에 포위돼 있다. 이런 판에 혁신성장이 가능할까.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