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국정감사 제도를 대폭 개선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감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은 데다 여야 국회의원이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잦아 후유증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2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의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전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의회가 필요할 때마다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여는 방식으로 행정부를 견제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상시 국감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간기업의 오너와 대표를 무더기로 소환해 호통치거나 ‘군기’를 잡는 식의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본에서는 의원들이 증인을 출석시킬 때 어떤 질문을 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미국 의회도 사전에 질의서를 주고 답변서를 받는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막무가내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과 일본 의회는 또 증인을 위협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이 청문회에 나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는 일도 적지 않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013년 미국 상원에서 열린 역외탈세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법인세율을 20%대로 낮추고 해외 수익의 본국 송금 세율도 35%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애플의 탈세 의혹을 제기하는 의원들에게 “낡아빠진 잣대로 디지털시대의 기업을 옥죄지 말라”고 역공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증인으로 나온 기업인이 의원들의 발언을 반박했다면 호통과 훈계가 쏟아졌을 것”이라며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유명 기업인을 불러내 고함을 치는 방식의 국감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