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포스코 사내하도급 판결을 앞두고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원청업체(포스코)가 전산관리시스템을 활용해 작업 관련 정보를 협력업체와 공유했다는 이유로 불법파견이라는 결론을 내린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커서다. 가뜩이나 법원이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전산관리시스템을 통한 정보 공유 여부가 불법파견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이게 되면 전산시스템을 활용하는 기업은 사내하도급을 통한 작업을 사실상 포기해야 해 가격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산시스템 공유했다고 불법파견?… 기업 "사내하청 쓰지 말란 소리"
◆1·2심 뒤바뀐 판결… 대법의 판단은

30일 법조계와 경제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르면 10월 중 포스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 15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 대한 최종심 판결을 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크레인 운전 업무를 하던 이들은 2011년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1심(2013년)은 “적법한 도급”이라고 결론냈다. 포스코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의 업무 영역이 다르고, 협력업체가 불법파견을 위한 ‘유령회사’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기업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2016년)을 맡은 광주고법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불법파견이라고 규정했다. MES(생산관리시스템·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로 불리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업무지시가 이뤄졌다는 게 원고(협력업체 근로자) 승소 판결의 주요 근거였다. MES는 공정계획에 따른 작업 물량과 작업 순서, 조업 진행 상황 등의 정보를 기록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실시간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공장 내 근로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제조업체가 공정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광주고법은 판결문에서 “MES에서 크레인을 이용한 운송대상과 운송순서, 운송지점이 결정되고 그 결정에 따른 업무지시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전달됐다”며 “(포스코가) MES를 통해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직접 작업지시를 한 것과 같다”고 했다. 포스코 측은 도급계약에 따라 협력업체에 맡겨진 업무(크레인을 이용한 운송)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MES로 단순정보를 공유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지만, 광주고법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불법파견 분쟁

한국의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은 경비와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한다. 제조업은 파견근로를 쓸 수 없다. 제조업체는 고용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때 주로 사내하청을 활용한다. 대신 원청업체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할 수 없다.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는 순간 불법파견이 된다.

광주고법은 포스코가 MES를 통해 업무 정보를 공유한 걸 ‘사실상의 업무지시’로 봤지만 산업계에서는 법원이 현장의 사정을 잘 모르고 판결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포스코가 MES를 활용해 협력업체 근로자 개인에게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도 아니고,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준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업무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하는 건 ‘깜깜이 업무’를 하라는 말과 같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법원은 최근 사내하도급 관련 소송에서 대부분 협력업체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전문가들은 사내하도급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종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일관 공정이 이뤄지는 제조업체에서는 대부분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이라는 식의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며 “사내하도급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판례를 통해서는 그 활용범위를 최소한으로 좁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사내하도급 인력을 쓰지 못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어서다. 기업이 규제를 피해 더욱 빠르게 자동화·무인화 공정을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한국 제조업체들이 고임금 구조 탓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압박해도 고용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기업들이 움츠러들어 고용을 최소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