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칼럼] 전기요금 체제 개편 논의 시작할 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 한다. 이젠 수도세, 전화세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 전기요금만이 여전히 세금처럼 인식되는 것은 강한 공공성 때문일 것이다. 즉 전기요금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전기요금 책정에는 각종 정책적 고려가 들어가 있다. 대부분 요금을 낮춰주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취약계층, 중소기업, 농어민, 공공시설, 다자녀 가구, 뿌리산업 및 심야 사용 등 갖가지 할인 규정이 있다. 전기요금 규정집인 전기요금 약관이 누더기가 된 까닭이다.

전기요금은 2013년 이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아마 전기 같은 상품은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 물가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이만한 공신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낮다. 그중에는 우리보다 두세 배 높은 국가도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은 전기요금과 관련해 큰 불만이 없는 편이다. 문제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찜통더위로 인해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면서 각 가정에 소위 ‘전기요금 폭탄’이 떨어진 데서 생겼다. 전기 과소비 억제를 위해 만든 ‘전기요금 누진제’가 서민과 중산층의 냉방권을 해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산업체나 건물 등의 전기 사용에는 누진제가 없는데 왜 가정용에만 6등급의 가파른 누진제를 적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정부는 가정용 전기에 대한 이런 불만을 받아들여 2년 전 누진제를 대폭 손질했고 올해 다시 한 번 손을 봐 이제 누진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실제로 올 8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본 가정들에선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제는 아열대성 여름날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이니 한여름에 전기절약 캠페인을 벌이는 게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지난 5년간은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이 좋아 전기요금 할인 부담을 한전이 고스란히 떠안아 정부도 큰 부담이 없었고 소비자의 불만도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한전이 적자 상태로 돌아서면서 투자와 지출 감축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전에 납품하거나 일감을 받던 수천 개의 연관 중소기업이 힘들어지면서 전력 수급 불안과 시설 안전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최대 공기업인 한전도 적절한 수준의 흑자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무엇보다도 ‘전기요금 원가 연동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전기요금을 석탄가나 유가 변화에 연동하는 제도로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는 전기요금이 오를 수도 있지만 내릴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게 돼 소비자 불만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현재 요금제도는 가정용, 산업용, 일반용, 농업용, 교육용 등 사용 주체에 따라 요금 체계가 다른데 이것이 늘 상대적 불만의 원인이 돼 왔다. 특히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 때문에 가정을 희생양 삼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용 주체에 따른 차별적 요금제도의 장단점을 대부분 선진국이 적용하고 있는 ‘전압별 요금제’ 등과 견줘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기요금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규모로 생산되는 태양광 발전이 거래될 수 있게끔 해주는 녹색요금제 도입, 그리고 전기차, 전기저장장치, 가상 발전소 등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하고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융합을 촉진하기 위한 시간별 또는 선택적 요금제도 개편이 그 핵심이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와 한전 등 관련 기관은 정밀하고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해 여러 가지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에 대한 공론화 등 광범위한 여론 수렴도 필요하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정치적으로 졸속 결정해서는 안 된다. 공공성, 형평성, 수입의 안정성과 국민경제 기여도 등이 균형적으로 반영되도록 신중하고 사려 깊게 추진해야 한다. 그 연구와 토론의 시작은 지금이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