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엔 ‘라이’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 이청청 디자이너(사진)는 5년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이 디자이너는 아버지인 이상봉 디자이너와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제 목표는 ‘이상봉 아들’이 아닌 ‘디자이너 이청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국내 1세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들로서 부담이 컸던 때였다. ‘이상봉컬렉션’의 디자인팀장이었던 그는 그 해 자신의 여성복 브랜드 ‘라이’를 처음 선보였다. 5년 만에 ‘패션의 성지’인 파리 무대에 오른 것이다.
파리에서 첫 패션쇼 연 이청청 디자이너 "라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이 디자이너는 “파리에서 열리는 바이어 대상 전시회 ‘트라노이’에 7번째 참석했고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컨셉코리아’에도 3번 참석했지만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디자이너의 이번 패션쇼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주관하는 ‘K패션 프로젝트 파리’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박윤희 디자이너의 ‘그리디어스’와 이 디자이너의 라이가 함께 팔래 브롱니아르에서 패션쇼를 꾸몄다.

욕타임즈, 우먼즈웨어데일리(WWD), FNL네트워크 등 유명 미디어를 포함해 5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유명 가수 비욘세의 스타일리스트인 타이 헌터가 참석해 라이 옷에 관심을 보였다. 라이는 블루 옐로 핑크 등 화려한 색상을 믹스매치한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 디자이너는 “뉴욕에서 쇼룸을 운영하면서 계속 미국 시장을 확대하고 있었는데 파리에서도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며 “파리에서 선호하는 화려한 디자인, 다양한 색 조합의 옷을 무대에 올린 것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파리에서 첫 패션쇼 연 이청청 디자이너 "라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이 디자이너의 라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뉴욕 단독 쇼룸을 비롯해 싱가포르 로빈슨백화점, 다카시마야백화점 등 해외 60여개 매장에 입점돼있다. 미국에선 자체 온라인몰을 운영하면서 현지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국내 패션 브랜드 중 유일하다. 라이는 지난달 한국패션협회의 ‘2018 월드스타디자이너 육성 사업’의 지원으로 미국 뉴욕에서 ‘에디트쇼’ 전시회에도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이 디자이너는 “미국에서 현재 14개 편집숍 매장에 입점했는데 50여곳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며 “미국 남동부 쪽과 중동 지역의 신규 바이어들과 계약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현재 라이는 미국과 홍콩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인기가 많다. 이 디자이너는 “이번 파리 패션쇼를 시작으로 유럽 시장을 확대하는 게 목표”라며 “바이어들이 컬러풀하면서 소재나 봉제, 마감 등 품질이 훌륭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첫 패션쇼 연 이청청 디자이너 "라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패션 명문대인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예술대학에서 아트디자인, 남성복을 전공한 이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대부분 여성이어서 여성복으로 시작했지만 2년 안에 남성복 브랜드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패션쇼를 위해 한 두 벌 정도의 남성복을 제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면 제대로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내년 봄·여름 패션 트렌드에 대해선 “캐주얼한 복고풍 스트리트 패션의 인기가 너무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이젠 좀 여성스러운 페미닌 의류를 찾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버지인 이상봉 디자이너가 조언을 해주는지 궁금했다. 이 디자이너는 “일부러 옷을 보여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아버지가 “이번 시즌 콘셉트가 뭐냐”, “좀 보여달라”고 할 정도다. 그는 “디자이너마다 자신의 감각과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저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라며 “아버지도 이젠 이해하고 존중해주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K패션의 위상이 달라진 것도 느낀다”며 “일본 유통업체들이 일본 브랜드를 키워주는 데 반해 한국 유통업체들은 해외 브랜드만 선호하는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 브랜드를 새롭고 멋스럽고 품질이 좋다고 느끼는 반면 내수시장에서 국내 디자이너를 ‘국산인데 비싸다’고 인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파리에서 첫 패션쇼 연 이청청 디자이너 "라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5년 전 목표로 했던 ‘디자이너 이청청으로 자리매김하기’는 이뤄진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알렉산더왕, 헬무트랭 같은 브랜드처럼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합리적 명품(affordable luxury) 브랜드로 알려지는 것이 라이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라이는 내년 봄에 샘소나이트와 한정판 핸드백, 백팩 등을 내놓기로 했다. 이 디자이너는 “재미있는 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다”며 “전세계 100곳의 매장을 열 때까지 더 열심히 해외를 누빌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