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 개발자 출신, 딥러닝 원리 적용
개 '비문' 분석 서비스도 곧 나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적은 힘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방치해 뒀다가 나중에 큰 힘을 들이게 된다는 뜻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인이라면 크게 공감하는 속담이다.
반려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검사가 필요하지만, 병을 모르고 묵혔다가 큰 비용을 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반려동물 건강진단키트 '어헤드'를 개발한 핏펫의 고정욱 대표(사진) 역시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제롬이(고 대표의 반려동물)'의 병을 모르고 지나쳤다가 결국 개복 수술이라는 가래를 끄집어낸 것이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고 대표는 "소변검사만 미리 했어도 약물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지만, 결국 큰 수술을 받게 돼 자책감이 들었다"며 "그길로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반려동물 진단키트를 개발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약 1년여 간의 개발 끝에 고 대표가 지난 4월 시장에 내놓은 반려동물 건강진단키트 '어헤드'는 월 평균 4000개 이상씩 팔리면서 반려인들 사이에선 꼭 사야할 필수품 중 하나로 입소문을 타는데 성공했다. 현재까지 누적 판매수량만 2만개가 넘는다.
어헤드는 반려동물의 소변으로 비중(SG), 잠혈, pH, 아질산염 등 10가지 항목을 검사해 당뇨, 요로감염, 요로결석, 간질환, 빈혈 등 다양한 질병의 이상 징후를 알려준다.
인기 요인은 손 쉬운 검사 방법이다. 소변을 시약막대에 묻힌 후 비색표 가운데에 올려서, 스마트폰에서 핏펫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촬영하면 끝이다. 그러면 앱이 자동으로 분석해 반려동물이 앓고 있는 병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병인지 결과를 표시해준다.
고 대표는 "국내외 통틀어 스마트폰을 활용해 반려동물 소변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은 핏펫이 유일하다"며 "딥 러닝 기술을 활용한 영상처리기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딥 러닝(Deep Learning)이란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한 기술로써 인간 두뇌의 신경 세포 활동을 모방하는 기계 학습 활동이다. 인간이 데이터를 확보해 입력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훈련하면서 패턴을 찾아내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어헤드는 이미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동물용 의료기기로 공식 인증을 받을 정도로 정확도를 인정 받았다. 가격은 1만4900원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분광기(빛 파장 원리를 활용해 소변을 분석하는 기계)보다 더 높은 정확도를 갖고 있다는 게 고 대표의 얘기다.
그는 "분광기 역시 99% 정도의 정확도로 질병을 잡아낼 수 있지만 어헤드는 비색표 오염으로 변색된 부분까지 스스로 보정해 분석할 수 있는 영상처리기술 덕분에 그보다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일찍부터 반려동물 사업에 관심이 있었다. 국내 최대 반려동물 인터넷 커뮤니티 핵심 운영자로 활동했고, 첫 직장이었던 삼성SDS 입사할 때도 혈액을 활용한 반려동물 건강검진키트를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2년 만에 삼성을 그만둔 뒤 처음 만든 스타트업 아이템도 태어날 때부터 피부병이 심했던 고 대표의 반려견을 위한 천연광목 방석과 물 없이 쓰는 가루샴푸였다.
그는 "첫 아이템의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아 아예 입사 시절 생각했던 건강검진키트를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라며 "삼성SDS에서 익힌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분석 기술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건강검진키트인 어헤드가 시장에 안착되자마자 고 대표는 관련 분야로 눈길을 돌렸다. 코 무늬로 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사람 손가락에 지문이 있듯이 개의 코에는 비문이 있는데 그 생체정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 역시 배타적이다. 겹치는 비문이 없다는 얘기다.
이 서비스도 스마트폰 기종과 주변 환경에 상관 없이 개의 비문을 정확하게 인식해 분석할 수 있는 영상처리기술이 핵심이다.
고 대표는 "반려동물 신원을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동물등록시스템이나 보험회사의 반려동물 신원확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내에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헤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는 동물병원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는 게 고 대표의 얘기다. 반려동물 소변검사로 올릴 수 있는 수익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이제는 동물병원에서 어헤드를 사용할 정도로 문의가 밀려들고 있다.
그는 "오히려 반려동물의 건강을 검진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게 되면 결국 동물병원을 찾는 빈도도 늘어날 것"이라며 "핏펫을 통해 더 많은 반려인들이 예방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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