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영상]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M&A로 화장품·생활용품·음료 '3각편대' 구축…기업가치 4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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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부문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면세점 매출 1위 화장품 '후'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 마케팅
中 '취향 저격' 최고급 선물로 인기
'인수합병 승부수' 통했다
코카콜라·해태음료 등 인수 성과
'사드 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
'퍼스트 무버'로 뛴다
"안일한 선택은 禍가 된다"
과감히 신사업 진출 단행
면세점 매출 1위 화장품 '후'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 마케팅
中 '취향 저격' 최고급 선물로 인기
'인수합병 승부수' 통했다
코카콜라·해태음료 등 인수 성과
'사드 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
'퍼스트 무버'로 뛴다
"안일한 선택은 禍가 된다"
과감히 신사업 진출 단행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 즉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려면 강을 건넌 뒤 배는 두고 가야 합니다. 배가 아깝다고 지고 간다면 이 배가 결국 발목을 잡게 됩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퍼스트 무버’를 강조한다.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도전과 혁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나뉜 사업을 음료로 확장할 때도, 4667억원을 들여 더페이스샵을 인수할 때도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성공이 아까워 현재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선택이 화가 돼 돌아올 것”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차 부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무리한 인수합병(M&A)”이라고 혹평하던 증권가 일부 애널리스트도 시간이 지나자 “현명한 판단이었다”며 그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실적이 이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등 차 부회장에게 붙은 수식어는 성과가 가져다준 것이다.
차 부회장이 LG그룹에 합류한 것은 2004년 말. 고(故) 구본무 전 LG 회장이 LG생활건강 대표(사장)로 스카우트했다. 성수기, 비성수기가 뚜렷한 화장품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과감하게 음료사업으로 발을 넓혔다.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하며 탄산음료 시장에 진출했고, 다이아몬드샘물로 생수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음료, 해태음료(현 해태htb), 영진약품의 드링크사업을 잇달아 사들이며 비탄산음료 시장에도 발을 들였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생활용품사업은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화장품, 음료사업과 함께 ‘3각 편대’로 안정적 구조를 갖췄다. 지난해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위기가 닥쳤을 때도 대부분의 국내 화장품업체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매출이 급감했지만 LG생활건강은 고성장을 이어갔다. 그가 구축해 놓은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 덕분이었다.
핵심 사업인 화장품에서도 그의 경영 능력은 두각을 나타냈다. 럭셔리 브랜드 ‘후’, ‘숨’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후의 대표 제품을 선보였고 입소문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빨간색, 금색을 활용해 최고급 세트 상품을 구성했다. 중국인들은 열광했고 정치인 연예인 등 중국 유명인사들은 선물용으로 후 화장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후는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1위를 기록하며 K뷰티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중국과 달리 국내에선 중저가 화장품 더페이스샵, 색조 화장품 보브(현 바이올렛드림)와 VDL로 젊은 소비자를 겨냥했다. 해외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 회사 긴자스테파니와 에버라이프를, 캐나다 회사 프루츠&패션을 사들였다.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부가 예민해진 여성이 점점 늘어난다는 데 착안해 더마코스메틱(약국화장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4년 CNP코스메틱스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엔 ‘도미나크림’으로 유명한 태극제약을 품에 안았다. 화장품업계에서 차 부회장을 ‘승부사’로 부르는 것은 이런 광폭 행보 때문이다.
차 부회장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매 분기 ‘최대 실적’ 기록을 쓰고 있다. 올해 2분기까지 매출은 2005년 3분기 이후 51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은 2005년 1분기 이후 53분기 연속으로 증가했다. 그가 취임한 뒤 회사 시가총액은 44배 이상 급증했다. 미국의 유명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발표한 ‘2015년 베스트 퍼포밍 코리안 CEO’ 1위에 차 부회장이 오른 것은 이런 성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공을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해준 직원들에게 돌렸다. 차 부회장은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K뷰티가 세계 화장품업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현재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차석용 부회장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1981년 뉴욕주립대 회계학과 졸업
△1983년 코넬대 MBA
△1985년 인디애나대 로스쿨 수료·미국 P&G 본사 입사
△1989년 한국P&G 이사
△1998년 P&G 쌍용제지 대표
△2000년 한국P&G 대표
△2001년 해태제과 대표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
△2012년 LG생활건강 부회장
■차석용 부회장은…
법정관리 해태제과 맡아
1년 만에 흑자전환 이끌어
故 구본무 회장이 직접 영입
LG그룹 내 최장수 CEO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말자"
임직원에 '半九十里' 강조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나와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기를 마친 뒤 입대했다. 전역 후 곧장 미국으로 갔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어머니가 패물을 팔아 생활비를 보내기도 했다. 뉴욕주립대 회계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코넬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수료했다. 1985년 미국 P&G 본사에 입사했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였다. 입사 14년 만에 한국P&G 총괄사장에 올랐다.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2001년 해태제과 대표로 영입됐다. 당시 법정관리를 받던 해태제과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2004년 말 구본무 LG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LG생건을 맡아 달라’는 제안에 그는 “영광입니다”라며 곧바로 수락했다. ‘정도 경영’과 ‘인재’를 강조하는 LG그룹에서라면 날개를 더 크게 펼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차 부회장은 LG그룹 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올해로 14년째다. LG그룹에서 외부 영입 인사가 부회장까지 오른 것은 그가 유일하다. 차 부회장은 출퇴근 시간을 근무자가 알아서 조절하는 유연근무제와 정시퇴근제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격식을 갖춘 회의보다는 직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효율적인 사내 소통을 강조했다.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고 “내가 도와주겠다”면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도록 독려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업 구조를 조금씩 탄탄하게 바꿨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매출의 절반씩 차지하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음료 사업으로 다각화했다. 화장품이 잘 팔리지 않는 여름철 실적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사들여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바꿔놨다.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을, 2010년 한국음료, 2011년 해태음료, 2013년 영진약품 드링크사업을 잇달아 인수했다. 그에게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화장품 사업은 더 강력하게 키워냈다. 럭셔리 브랜드 ‘후’를 1조원대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콘셉트가 다른 색조 및 스킨케어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실적은 뒤따라왔다. 올해 2분기 ‘51분기 연속 최대 분기 매출 경신’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아시아 대표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룬 것에 자만하지 않는 ‘반구십리(半九十里: 100리를 가야 하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삼는다)’의 자세로 힘차게 다시 시작하자”고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퍼스트 무버’를 강조한다.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도전과 혁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나뉜 사업을 음료로 확장할 때도, 4667억원을 들여 더페이스샵을 인수할 때도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성공이 아까워 현재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선택이 화가 돼 돌아올 것”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차 부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무리한 인수합병(M&A)”이라고 혹평하던 증권가 일부 애널리스트도 시간이 지나자 “현명한 판단이었다”며 그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실적이 이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등 차 부회장에게 붙은 수식어는 성과가 가져다준 것이다.
차 부회장이 LG그룹에 합류한 것은 2004년 말. 고(故) 구본무 전 LG 회장이 LG생활건강 대표(사장)로 스카우트했다. 성수기, 비성수기가 뚜렷한 화장품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과감하게 음료사업으로 발을 넓혔다.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하며 탄산음료 시장에 진출했고, 다이아몬드샘물로 생수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음료, 해태음료(현 해태htb), 영진약품의 드링크사업을 잇달아 사들이며 비탄산음료 시장에도 발을 들였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생활용품사업은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화장품, 음료사업과 함께 ‘3각 편대’로 안정적 구조를 갖췄다. 지난해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위기가 닥쳤을 때도 대부분의 국내 화장품업체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매출이 급감했지만 LG생활건강은 고성장을 이어갔다. 그가 구축해 놓은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 덕분이었다.
핵심 사업인 화장품에서도 그의 경영 능력은 두각을 나타냈다. 럭셔리 브랜드 ‘후’, ‘숨’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후의 대표 제품을 선보였고 입소문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빨간색, 금색을 활용해 최고급 세트 상품을 구성했다. 중국인들은 열광했고 정치인 연예인 등 중국 유명인사들은 선물용으로 후 화장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후는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1위를 기록하며 K뷰티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중국과 달리 국내에선 중저가 화장품 더페이스샵, 색조 화장품 보브(현 바이올렛드림)와 VDL로 젊은 소비자를 겨냥했다. 해외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 회사 긴자스테파니와 에버라이프를, 캐나다 회사 프루츠&패션을 사들였다.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부가 예민해진 여성이 점점 늘어난다는 데 착안해 더마코스메틱(약국화장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4년 CNP코스메틱스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엔 ‘도미나크림’으로 유명한 태극제약을 품에 안았다. 화장품업계에서 차 부회장을 ‘승부사’로 부르는 것은 이런 광폭 행보 때문이다.
차 부회장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매 분기 ‘최대 실적’ 기록을 쓰고 있다. 올해 2분기까지 매출은 2005년 3분기 이후 51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은 2005년 1분기 이후 53분기 연속으로 증가했다. 그가 취임한 뒤 회사 시가총액은 44배 이상 급증했다. 미국의 유명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발표한 ‘2015년 베스트 퍼포밍 코리안 CEO’ 1위에 차 부회장이 오른 것은 이런 성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공을 묵묵히 제자리에서 일해준 직원들에게 돌렸다. 차 부회장은 “K뷰티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K뷰티가 세계 화장품업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현재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차석용 부회장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1981년 뉴욕주립대 회계학과 졸업
△1983년 코넬대 MBA
△1985년 인디애나대 로스쿨 수료·미국 P&G 본사 입사
△1989년 한국P&G 이사
△1998년 P&G 쌍용제지 대표
△2000년 한국P&G 대표
△2001년 해태제과 대표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
△2012년 LG생활건강 부회장
■차석용 부회장은…
법정관리 해태제과 맡아
1년 만에 흑자전환 이끌어
故 구본무 회장이 직접 영입
LG그룹 내 최장수 CEO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말자"
임직원에 '半九十里' 강조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나와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기를 마친 뒤 입대했다. 전역 후 곧장 미국으로 갔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어머니가 패물을 팔아 생활비를 보내기도 했다. 뉴욕주립대 회계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코넬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수료했다. 1985년 미국 P&G 본사에 입사했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였다. 입사 14년 만에 한국P&G 총괄사장에 올랐다.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2001년 해태제과 대표로 영입됐다. 당시 법정관리를 받던 해태제과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2004년 말 구본무 LG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LG생건을 맡아 달라’는 제안에 그는 “영광입니다”라며 곧바로 수락했다. ‘정도 경영’과 ‘인재’를 강조하는 LG그룹에서라면 날개를 더 크게 펼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차 부회장은 LG그룹 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올해로 14년째다. LG그룹에서 외부 영입 인사가 부회장까지 오른 것은 그가 유일하다. 차 부회장은 출퇴근 시간을 근무자가 알아서 조절하는 유연근무제와 정시퇴근제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격식을 갖춘 회의보다는 직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효율적인 사내 소통을 강조했다.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고 “내가 도와주겠다”면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도록 독려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업 구조를 조금씩 탄탄하게 바꿨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매출의 절반씩 차지하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음료 사업으로 다각화했다. 화장품이 잘 팔리지 않는 여름철 실적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사들여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바꿔놨다.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을, 2010년 한국음료, 2011년 해태음료, 2013년 영진약품 드링크사업을 잇달아 인수했다. 그에게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화장품 사업은 더 강력하게 키워냈다. 럭셔리 브랜드 ‘후’를 1조원대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콘셉트가 다른 색조 및 스킨케어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실적은 뒤따라왔다. 올해 2분기 ‘51분기 연속 최대 분기 매출 경신’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아시아 대표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룬 것에 자만하지 않는 ‘반구십리(半九十里: 100리를 가야 하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삼는다)’의 자세로 힘차게 다시 시작하자”고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