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실업률은 반비례 관계라는 전통 경제이론인 필립스곡선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 호황 때 실업률이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최근 미국에선 물가 인상 압박이 크지 않은 가운데서도 완전 고용 수준으로 실업률이 떨어져서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2일(현지시간) 낮은 실업률 등을 근거로 경기 과열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필립스곡선까지 거론하며 반박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는 만큼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필요가 없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견해를 정중하게 거부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美 저실업·저물가에 '필립스곡선' 또 논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기업경제협회(NABE) 연설에서 “1950년대 이후 미국이 이렇게 오랜 기간 실업률이 낮으면서 물가상승률도 낮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 과열은 아니며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이 유지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Fed가 기존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은 필립스곡선 이론을 근거로 한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최근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상관관계는 크게 줄어들었다”며 “(미국의 경제 상황은) 현대 경제지표를 분석하기 시작한 이후 희귀한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파월 의장이 지금의 경제 상황을 물가 급등과 같은 부작용 없이 호황을 구가하는 ‘골디락스’ 국면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대해 “(실업률과 물가의 상관관계는 약해졌지만) 필립스곡선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실업률과 물가 등 다양한 지표들이 급변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필립스곡선 유효성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 같은 논란은 1990년대 말 미국의 닷컴 버블 당시 물가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데도 낮은 실업률이 유지되면서 시작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양적완화 정책 영향으로 실업률이 2009년 10%에서 지난해 4%대로 떨어지는 동안 물가상승률은 연 1~2%에 그쳐 논란은 더 커졌다. 필립스곡선 무용론을 주장하는 측에선 제조업의 글로벌 분업과 자동화 등으로 임금 상승이 곧바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Fed 안팎에선 필립스곡선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필립스곡선의 복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지난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연율로 환산해 4%를 넘어섰고 증시는 역대 최장 기간 호황을 이어가는 등 경기가 과열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에서도 필립스곡선이 유효하다는 연구가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8월 ‘유로 지역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 보고서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고 밝혔다. 유로 지역은 2012~2014년 높은 실업률에도 물가상승률이 높은 상태를 유지했고, 2014~2017년엔 노동시장이 호황임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았다. IMF는 이에 대해 “연구 결과 고용시장에서의 변화가 인플레이션으로 전이되는 기간이 길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