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화학 공정·질환치료에 '최적화' 효소·항체 제작 방법 개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부터 거대한 포유류까지 생물은 뜨거운 웅덩이나 깊은 바다, 건조한 사막 등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서 생물이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단백질'을 환경에 맞게 변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이런 단백질의 변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일으키는 방법을 개발해 신약 물질이나 신소재 등을 생산할 길을 연 미국과 영국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3일 노벨위원회는 프랜시스 아널드(62)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교수, 조지 P. 스미스(77) 미국 미주리대 교수, 그레고리 P. 윈터(67)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원 등 3명을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진화 과정을 제어해 인류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줬다"라고 평가했다.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이 긴 사슬로 이어진 뒤 접힌 3차원 구조의 물질이다.

각 부위를 이루는 아미노산의 종류가 바뀌면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기능도 변하게 된다.

프랜시스 아널드 교수는 단백질 중 생체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효소'(enzyme)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종류를 일부 치환하고 이를 통해 효소의 기능이 바뀔 수 있음을 1993년 최초로 확인했다.

아널드 교수가 타깃으로 삼은 효소는 '서브틸신'(subtilisin)이라는 것으로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을 분해한다.

서브틸신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뒤 세균에 주입하자, 이 세균은 일부 아미노산이 바뀐 '변형 효소'를 생산했고 이들 중에는 카제인을 분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이렇게 효소를 변형하는 방식을 통해 현재는 바이오 연료나 유용 화학물질을 만드는 '친환경 촉매'를 개발하는 데 이르게 됐다.

변형 효소를 이용하면 복잡한 화학 공정을 간단하게 줄이거나 유독물질을 쓰지 않고도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조지 스미스 교수는 '박테리오파지'라는 세균 감염 바이러스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생산하는 '파지 전시법'(Phage display)을 개발했다.

조유희 차의과대 교수는 "어떤 특정 물질(항원)에 결합하는 단백질이나 펩타이드의 구조를 알고 싶을 때, 항원을 파지 표면에 노출한 뒤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항원에 결합하는 단백질이나 펩타이드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며 "이 방법으로 항원에 결합하는 단백질이나 펩타이드의 구조를 알아내면,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항체도 인간에 주입하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레고리 윈터 연구원은 파지 전시법을 이용해 실제 의약물질로 쓸 수 있는 항체(Antibody)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 파지전시법은 자가면역질환이나 전이성 암 치료 항체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2002년 승인을 받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물질인 '아달리무맙'이 대표 사례다.

다국적제약사 애브비는 아달리무맙을 '휴미라'라는 류머티즘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강직 척추염, 건선 등 치료제로 제품화했다.

휴미라는 지난해 기준 연간 매출이 약 2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판매 1위 바이오의약품이 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자연상태에서는 효소가 어떤 기능을 갖도록 진화하는 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리지만 아널드 교수가 개발한 '유도진화'나 스미스 교수와 윈터 연구원이 개발한 파지전시법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에게 필요한 기능을 가진 효소나 항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진화의 힘'을 인간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