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 특허, 이형석 변리사
KLP 특허, 이형석 변리사
최근 갑을관계가 계속해서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자가 그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것을 가로채는 문제이다. 산업계에서는 기술침탈이라는 형태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다. 계약이나 거래관계에서 약자인 을의 기술을 갑이 정당한 대가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심한 경우 자신의 것으로 소유권을 빼앗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특허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막기위해 진정한 발명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규정들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발명자주의가 아니라 출원인주의를 취하고 있기에 진정한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온전히 보호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억울한 일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이러한 진정한 발명자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정착시킴으로써 이를 보호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기업 내부 관점으로 보면 기술을 완성하여 특허를 등록받는 과정에서 진정한 발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직무발명이라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최종적으로는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가 소속 기업에 양도되기는 하지만, 특허받을 수 있는 권리는 그 발명을 완성한 종업원에게 원시적으로 생겨난다고 명시함으로써 진정한 발명자로서의 종업원의 권리를 정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발명자는 보상금 청구권 등 다양한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 실정에 맞춰 이러한 직무발명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관련 법 규정을 몇 차례 손질해오고 있으며 다양한 장려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의 기술침탈을 문제삼는 기업 중에 종업원들의 진정한 발명자로서의 권리 보호에는 소홀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가상의 사례를 통해 그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면도기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기업의 대표 A가 있다. A는 면도기에 날을 1개 더 추가하면 면도기 성능 개선을 통해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자 B에게 관련 연구를 요청하고 연구비를 지원하였다. B는 연구 과정에서 날이 3개인 면도기에 대한 선행 연구가 다수 있었고, 관련 특허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B는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보조 날을 더 추가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에 A는 1.5개의 면도날이 추가된 면도기에 대한 안전/성능 시험을 C에게 의뢰하여 사용상에 문제가 없는지, 상품화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이 아이디어가 특허로 출원될 때 진정한 발명자는 누가 될까?

이는 필자가 가상으로 상정한 것이지만, 특정 발명의 진정한 발명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은 실제 직무발명사건에서 많이 다투어지는 이슈 중 하나이다. 기업에서 하나의 발명이 완성되기까지 다수의 담당자가 관여하는게 일반적인데다, 소속 기관이 다른 다수의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도 늘어나고 있어 누구를 진정한 발명자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그 특허에 대한 권리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공동발명자가 되기 위해서는 발명의 완성을 위하여 실질적으로 상호 협력하는 관계가 있어야 하므로, 단순히 발명에 대한 기본적인 과제와 아이디어만을 제공하였거나, 연구자를 일반적으로 관리하였거나, 연구자의 지시로 데이터의 정리와 실험만을 하였거나, 자금·설비 등을 제공하여 발명의 완성을 후원·위탁하였을 뿐인 정도 등에 그치지 않고, 발명의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착상을 새롭게 제시·부가·보완하거나, 실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착상을 구체화하거나, 발명의 목적 및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의 제공 또는 구체적인 조언·지도를 통하여 발명을 가능하게 한 경우 등과 같이 기술적 사상의 창작행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에 이르러야 공동발명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09다75178판결 등).

만약 A가 중소기업 대표이고, B와 C는 A에게 하청을 주는 대기업 소속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B가 본인을 발명자로하는 직무발명기안서를 작성하여 기업 담당부서에 제출함으로써 A가 발명자나 출원인으로 포함되지 않고 대기업의 특허로 출원되었다고 가정해보자. A는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지만 특허는 대기업의 소유가 되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기에 대기업이 몰래 기술을 침탈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기업이 기술을 침탈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의 대표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사례를 간혹 듣게 된다. 과연 이 경우에 기술 침탈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사례로 돌아가보자. 당연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진정한 발명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위에서 언급된 이야기가 전부라고 했을 때,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연구자 B만이 진정한 발명자가 될 것이다. B는 연구를 통해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착상을 새롭게 보완하여, 발명의 목적 및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발명을 가능하게 하여 기술적 사상의 창작행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

만약 시험 담당자인 C가 성능 시험 도중 면도기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된 보조날의 설치 각도를 특정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 내용이 특허에 포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C도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가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단순 시험만 진행했던 C는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A는 어떨까. 연구 초기에 기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연구를 지시하고, 상품화를 위한 안전/성능 시험을 지시하기까지 했지만 이는 발명의 완성을 후원·위탁하는 활동에 불과하다. 특허 대상이 되는 아이디어가 완성되는 과정에 직접 연관되어 있지는 않았다. 날 1.5개를 추가하는 발명에 대해서는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주장하기 힘들다.

독립청구항인 1항에는 A가 제안한 아이디어처럼 날 1개만 추가하는 면도기 구성이 개시되어 있고, 종속항인 2항에는 B가 제안한 아이디어인 날 1.5개를 추가하는 면도기 구성이 개시되어 있을 수 있다. 이는 발명의 핵심 아이디어와는 별개로 특허 실무적으로 자부 발생하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A 또한 발명자로 추가될 수 있다, 하지만 심사과정에서 상기 독립청구항이 거절되어 삭제 보정된 채로 등록된다면, A는 다시 발명자란에서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업 내부에서는 어떻게 진행될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허 발명자란에 A, B 및 C의 이름이 모두 기재된다. 딱히 누가 진정한 발명자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관련자 전원의 이름이 기재된다. 심한 경우 위 사례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연구소장 D의 이름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회사 대표인 A의 이름만 발명자란에 기재되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발명자인 B의 권리는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B와 C가 중소기업 대표와 직원이고, A가 중소기업에게 하청을 주는 대기업 직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 했던 설명에 따르면 이 특허는 중소기업의 소유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A가 자신을 발명자에 추가해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A가 이 기술의 유일한 발명자가 되어 이 특허에 대한 소유권을 대기업이 가져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침탈한 것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대기업이 하청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침탈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가 주어져서도 안된다. 하지만, 기술 침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면 어쩌면 우리 기업 내부에서도 부지불식간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특허청은 직무발명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직무발명제도 도입 및 운영과 관련된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기업 맞춤형 제도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직무발명에 대한 인식이 제고 될 수 있도록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직무발명보상 우수기업 인증제를 운영해 모범적인 직무발명보상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인증을 받은 기업에게는 4~6년차 특허등록료 감면, 우선 심사 지원,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 가점 획득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고 한다.

상당수 기업이 발명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직원들과 소송을 겪기도 했고 기술 유출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직무발명제도는 기업의 핵심 인재와 기술 유출을 막는 방패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기업이 진정한 발명자로서 종업원을 인정하여 직무발명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는 등 발명자에게 좋은 처우를 하고, 이것이 종업원의 훌륭한 발명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다면, 기업과 기술자 모두가 풍요롭게 되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발명자를 우대하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 KLP 특허 이형석 변리사

정리= 경규민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