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가장 축복받은 M세대 vs 청년실업·양극화에 'N포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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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4주년 - 세상을 바꾸는 밀레니얼 파워
무엇이 밀레니얼 세대를 만들었나
디지털 혁명·다양성 공존의 자유 누려
사교육 절정…해외에서도 스펙쌓기
태어날 때부터 IT 친숙…SNS로 소통
학창시절 외환위기 '트라우마'
사회 나오니 금융위기 겪은 불운
"안정이 최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
고성장→저성장, 아날로그→디지털
한국사회 과도기 거치며 '양면성'
"현실부정·자포자기 늘어난만큼
성공에 대한 욕망, 누구보다 강해"
무엇이 밀레니얼 세대를 만들었나
디지털 혁명·다양성 공존의 자유 누려
사교육 절정…해외에서도 스펙쌓기
태어날 때부터 IT 친숙…SNS로 소통
학창시절 외환위기 '트라우마'
사회 나오니 금융위기 겪은 불운
"안정이 최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
고성장→저성장, 아날로그→디지털
한국사회 과도기 거치며 '양면성'
"현실부정·자포자기 늘어난만큼
성공에 대한 욕망, 누구보다 강해"
1981~1996년 태어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1098만4493명. 전체 인구의 21.2%를 차지한다(행정안전부 9월 통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자녀인 이들은 경제성장과 디지털혁명의 혜택을 듬뿍 누리며 자랐다. 한때 ‘단군 이래 가장 축복받은 세대’로 불린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과 저성장·양극화의 그늘 속에 ‘N포 세대’(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로 전락하기도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고성장에서 저성장,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한 한국 사회의 과도기를 거친 사람들”이라며 “당차고 자기중심적이면서도 불안과 자조에 시달리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고도성장·핵가족화 속 풍요로운 유년기
밀레니얼 세대가 태어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고도성장의 막바지 절정기를 달렸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 속에 경제는 해마다 10% 안팎 성장했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국제화 물결이 거세졌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됐고, 1996년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전통적인 대가족은 사라지고 급속한 핵가족화가 이뤄졌다. 한국은 1983년 합계출산율(2.06명, 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신생아 수)이 인구대체율(2.10명, 인구 현상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보다 낮아지면서 저출산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1990년대 학원·과외가 전면 허용되자 부모들은 사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릴 적부터 새로운 정보기술(IT)에 친숙했다. 케이블TV(1995년), 초고속인터넷(1998년), 스마트폰(2009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세대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H.O.T, 젝스키스 같은 1세대 아이돌그룹부터 힙합, 인디밴드까지 폭넓은 문화콘텐츠를 향유한 점도 이전 세대와 차별화된 특징이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겪고…
밀레니얼 세대는 국민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1996년 변경)를 나왔다. 영어와 컴퓨터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됐고, 원어민교사가 교실에 등장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인권이 화두가 되면서 중·고교 분위기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강제 자율학습과 체벌은 금지됐고, “공부를 못해도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로 대표되는 대입전형 다양화 정책이 도입됐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밀레니얼 세대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1년 동안 직장을 잃은 사람만 130만여 명.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부모의 실직과 파산, 가정해체를 경험한 이가 적지 않다.
정바울 서울교대 교수는 “중·고교생 때 부모의 경제적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 밀레니얼 세대는 ‘안정’을 인생의 중요 목표로 삼게 됐다”고 설명했다. 20~30대 상당수가 공무원과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안정지향적 성향으로 돌아선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4년 만에 ‘IMF 졸업’에 성공했지만 경제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됐다.
운동권 사라진 캠퍼스에서 ‘최강 스펙’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대학을 나왔다. 1980년 11.4%에 그쳤던 대학 진학률은 2008년 70.5%까지 치솟았다. 이들의 대학 생활은 바로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강성 운동권 문화가 사라진 2000년대 이후 캠퍼스에서는 ‘스펙 쌓기’가 화두가 됐다.
새내기 때부터 학점 관리에 신경 쓰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등을 다녀왔다. 이즈음 조기유학 열풍도 절정에 달해 연간 2만~3만 명의 초·중·고교생이 외국 학교로 나갔다. 외국어 실력에 해외 체류 경험까지 갖춘
레니얼 세대가 ‘글로벌 노마드족(族)’ 성향을 띠게 된 배경이다.
역사상 ‘최강 스펙’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채용이 줄면서 ‘고용절벽’이 한층 가팔라졌다. 1990년대 초·중반 5% 안팎을 오르내리던 청년실업률은 10% 언저리로 높아졌다. 어렵사리 취업전선을 뚫자마자 학자금대출부터 갚아야 하고, 이후에는 내집 마련이 걱정이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2.9세, 여자 30.2세로 1990년보다 5년 이상 늦어졌다.
이재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성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부정과 자포자기를 우려하지만 사실 이들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세대”라며 “최근 비트코인과 갭투자(전세 끼고 집 사기) 열풍의 본질도 이런 박탈감이 비뚤어진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밀레니얼 세대가 태어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고도성장의 막바지 절정기를 달렸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 속에 경제는 해마다 10% 안팎 성장했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국제화 물결이 거세졌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됐고, 1996년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전통적인 대가족은 사라지고 급속한 핵가족화가 이뤄졌다. 한국은 1983년 합계출산율(2.06명, 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신생아 수)이 인구대체율(2.10명, 인구 현상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보다 낮아지면서 저출산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1990년대 학원·과외가 전면 허용되자 부모들은 사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릴 적부터 새로운 정보기술(IT)에 친숙했다. 케이블TV(1995년), 초고속인터넷(1998년), 스마트폰(2009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세대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H.O.T, 젝스키스 같은 1세대 아이돌그룹부터 힙합, 인디밴드까지 폭넓은 문화콘텐츠를 향유한 점도 이전 세대와 차별화된 특징이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겪고…
밀레니얼 세대는 국민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1996년 변경)를 나왔다. 영어와 컴퓨터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됐고, 원어민교사가 교실에 등장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인권이 화두가 되면서 중·고교 분위기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강제 자율학습과 체벌은 금지됐고, “공부를 못해도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로 대표되는 대입전형 다양화 정책이 도입됐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밀레니얼 세대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1년 동안 직장을 잃은 사람만 130만여 명.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부모의 실직과 파산, 가정해체를 경험한 이가 적지 않다.
정바울 서울교대 교수는 “중·고교생 때 부모의 경제적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 밀레니얼 세대는 ‘안정’을 인생의 중요 목표로 삼게 됐다”고 설명했다. 20~30대 상당수가 공무원과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안정지향적 성향으로 돌아선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4년 만에 ‘IMF 졸업’에 성공했지만 경제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됐다.
운동권 사라진 캠퍼스에서 ‘최강 스펙’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대학을 나왔다. 1980년 11.4%에 그쳤던 대학 진학률은 2008년 70.5%까지 치솟았다. 이들의 대학 생활은 바로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강성 운동권 문화가 사라진 2000년대 이후 캠퍼스에서는 ‘스펙 쌓기’가 화두가 됐다.
새내기 때부터 학점 관리에 신경 쓰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등을 다녀왔다. 이즈음 조기유학 열풍도 절정에 달해 연간 2만~3만 명의 초·중·고교생이 외국 학교로 나갔다. 외국어 실력에 해외 체류 경험까지 갖춘
레니얼 세대가 ‘글로벌 노마드족(族)’ 성향을 띠게 된 배경이다.
역사상 ‘최강 스펙’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채용이 줄면서 ‘고용절벽’이 한층 가팔라졌다. 1990년대 초·중반 5% 안팎을 오르내리던 청년실업률은 10% 언저리로 높아졌다. 어렵사리 취업전선을 뚫자마자 학자금대출부터 갚아야 하고, 이후에는 내집 마련이 걱정이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2.9세, 여자 30.2세로 1990년보다 5년 이상 늦어졌다.
이재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성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부정과 자포자기를 우려하지만 사실 이들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세대”라며 “최근 비트코인과 갭투자(전세 끼고 집 사기) 열풍의 본질도 이런 박탈감이 비뚤어진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