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편의점에 가보면 재기 발랄한 상품 구성에 놀라곤 한다. 와인만 해도 그렇다. ‘편의점에서 와인을 사도 될까?’ 싶을 수도 있지만 좁은 공간에 선별된 상품을 갖춰 놓으니 믿음직한 상품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안주는 어떨까? 와인의 세계에서는 음식과 와인의 만남을 두고 ‘마리아주’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결혼’이란 뜻이다. 밥상머리에서 음식을 맛보며 결혼을 운운하다니 너무 심각한 것 아닌가 싶지만,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을 넘어서는 시너지 효과를 맛보고 나면 이해가 된다. 와인 페어링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칼질 정도는 해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일상적인 음식과도 충분히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산 소시지, 라면, 과자와는 어떨까? 궁금증을 안고 편의점을 향했다.

◆쏜 클락 네이처 사운드엔 치즈 퐁듀 과자

쏜 클락 네이처 사운드는 호주 대표 품종 쉬라즈(shiraz)로 만든 와인이다. 밝은 레드 프루트의 아로마가 즉각적으로 기분 좋게 뿜어져 나오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타닌의 결도 곱다. 이 와인과 다양한 매칭을 시도해봤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의외의 페어링 두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GS25의 자체상표(PB) 상품인 ‘치즈퐁듀’ 과자다. ‘치즈 파우더를 가미한 스낵’이라는 문구를 보고 집어 들었는데 집에 와서 열어 보니 화이트 초콜릿으로 코팅된 달콤한 과자였다. 끝까지 글을 읽지 않고 무심코 집어 든 탓이다. 와인 페어링을 할 때는 음식이 단 경우 와인도 그에 밀리지 않게 당도를 맞춘다. 그렇지 않다면 덜 단 쪽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치즈퐁듀 과자와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먼저 체더치즈 파우더의 짭짤함이 혀에 닿고 곧이어 화이트 초콜릿의 달콤한 기운이 입안에 감돌았다. 아삭한 과자를 씹은 후 와인을 입안에 흘려 넣자 달콤함은 더욱 상승하고 옥수수 파우더로 만든 과자의 풍미가 더 깊게 느껴졌다. 성공적인 페어링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페어링은 ‘제주 해녀 해물맛 라면’과의 조합이었다. 라면에는 매콤하고 묵직한 국물이 들어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코올을 섭취한 뒤에는 무조건 국물을 찾지만 사실 와인과 국물은 피해야 할 마리아주다. 액체와 액체가 만나면 서로가 지닌 특징이 흐려져 본래의 맛과 향에 해를 끼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 해녀 해물맛 라면과 쏜 클락 네이처 사운드 쉬라즈가 만나자 국물의 진한 맛이 더욱 느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조합이 재미있어서 계속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라면 한 사발이 뚝딱, 와인도 끝이 났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멀쩡했으니 해장과 음주가 동시에 이뤄지는 ‘신박(?)’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솔데패냐스 레드는 소시지·스트링 치즈

솔데패냐스 레드는 스페인 토착 품종 템프라니요(tempranillo)와 가르나차(garnacha) 블렌딩으로 만든 와인이다. 스모키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어린 템프라니요에서 오는 거친 타닌이 없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달지 않은 맛을 자랑한다. 하프 보틀 와인으로 고기가 들어간 편의점 도시락에 반주를 해도 좋다. 더 간단한 안주와 함께한다면 소시지나 스트링 치즈를 추천한다.

GS25에서 산 ‘매운 불맛 후랑크’와의 조합이 가장 흥미로웠다. 소시지는 아주 매웠는데, 일반적으로 매운맛은 타닌감이 풍부한 레드 와인과는 페어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와인의 타닌감이 강하지 않아 서로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제법 잘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트링 치즈와는 페어링의 정석과도 같은 동반자적 마리아주를 보여준다.

◆발데파블로 상그리아엔 감자칩

발레파블로는 투명하고 맑은 루비빛에 인공적이지 않은 청량한 과실향이 매력적인 상그리아다. 하프 보틀 사이즈의 스크루 캡으로 마감이 돼 피크닉이나 영화관에 들고 가기도 좋고 알코올 도수도 7도로 낮은 편이라 부담이 없다. 살짝 감미로움이 있어 짭짤한 감자칩이나 스트링 치즈, 나초 치즈 콤보와 매칭이 좋았다. ‘단짠’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니 편의점에서도 수없이 다양한 페어링이 가능한 품목이다.

양진원 < 와인칼럼니스트·프리랜서 와인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