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주 한 방송에 출연해 “한국 사회는 보수 진보 간 토론도 필요하지만 진보 진영 내부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산분리 등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진보 진영의 경직적 사고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는 “인터넷전문은행 논란과 관련해 삼성그룹만 제한하자는 식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삼성은 이미 220조원에 달하는 삼성생명을 갖고 있어 10조원 규모의 인터넷전문은행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진보 진영은 어째서 2002년 만들어진 현행 은행법 은산분리를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되는 금과옥조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내 일부에서 ‘은산분리 완화=재벌 사금고화’라며 격렬하게 반대해온 것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과거 자본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사금고화 유혹도 컸지만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거치며 오히려 금융회사를 운영하는 위험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의 발언은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해온 이들의 논리와 같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실 요즘은 자금이 부족하지도 않고 은행들이 대기업에 돈 빌려주겠다고 줄을 서는 마당이다. 게다가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들은 인터넷전문은행에 관심이 없다. 괜히 진출했다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 때문에 수시로 조사와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런 현실을 시민단체들과 일부 정치권만 애써 외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계속하니 여권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이기도 하다”고 말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를 ‘규제혁신 1호 법안’으로 지목한 이유가 확인된 셈이다. 김 위원장의 작심 발언은 정부·여당이 갈림길에 서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反)기업’ ‘규제 만능주의’와 같은 구태의연한 진영논리에 머물 것인지, 현실을 인정하고 정책 방향을 틀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