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심 법원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돼 집행유예형을 받자, 비슷한 혐의로 대법원 상고심을 남겨 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5일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뇌물을 준 것은 맞지만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므로 엄격히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적용했다. 법조계에선 이 부회장 역시 신 회장과 비슷한 상황에서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어 유리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내다봤다.
'대통령 강요' 인정한 신동빈 재판, 이재용 3심 어떻게 작용할까
◆“이재용·신동빈, 강요의 피해자”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가 신 회장에게 1심보다 대폭 감형된 집행유예를 선고한 근거는 신 회장을 ‘강요형 뇌물의 피해자’로 봤기 때문이다. 1·2심 모두 2016년 3월 신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면담 자리에서 롯데월드타워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묵시적인 청탁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점을 인정하며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란 두려움으로 돈을 지원한 측면이 있다”며 “강요에 의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신 회장 사건과 닮아 있는 게 이 부회장 사건이다. 이 부회장도 박 대통령과 독대한 뒤 미르·K스포츠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정유라 씨 승마훈련비 지원 등 명목으로 298억여원(약속 433억여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2심에서 강요에 의한 ‘피해자’임을 인정받고 석방됐으나, 지난 8월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삼성으로부터 청탁과 뇌물을 받은 혐의가 추가로 인정되면서 상고심에서 크게 불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재판부가 삼성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승계 작업’이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데다 삼성이 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여원을 뇌물액에 추가한 것이다.

◆이재용 실형 면할 가능성 커져

그러나 이 부회장과 신 회장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에서 연달아 ‘강요에 따른 뇌물’에 대해서는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 만큼 이 부회장 상고심에도 일단 ‘파란불’이 켜졌다.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지원비 등을 강제로 낼 수밖에 없었다”는 삼성의 주장을 대법원이 인정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핵심 혐의인 뇌물죄를 놓고 신 회장과 같이 정상참작받으면 실형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롯데와 삼성은 뇌물의 목적 실현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변수다. 신 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지원금 교부 이전이나 이후, 롯데그룹 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특별히 유리한 직무집행이 이뤄지거나 편의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즉, 뇌물과 관련해 롯데 측이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은 뇌물을 제공한 대가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이란 결과를 얻게 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과 롯데그룹이 상고할 경우 주요 국정농단 재판 모두 대법원에 올라가게 된다. 이 부회장의 상고심 재판은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에 배당돼 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아직 담당 재판부와 주심 대법관이 정해지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이들 사건이 모두 병합돼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