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험방요결을 통해 가전비방을 전수하니 양방과 한방의 장점을 살려 후손들이 한의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게 하라.”

신준식 자생한방병원 명예이사장 "현대화한 한의학 비법, 이제 해외서 먼저 찾아"
신준식 자생한방병원 명예이사장(사진)의 부친 청파 신현표 선생이 집대성한 의서의 맺음말이다. 신현표 선생은 독립운동단체인 대진단 단원으로 1927년부터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3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1932년 만주에서 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그는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1957년 한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흩어져 있던 집안 비방인 청파험방요결을 모아 책으로 정리한 것도 이즈음이다.

60여 년이 지났다. 신 명예이사장은 의서에 나온 비방을 추나요법, 동작침법 등 비수술 척추치료법으로 현대화했다. 미국 정골의학협회(AOA)는 지난달 이 치료법을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채택했다. 한의학이 미국 전역으로 뻗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신 명예이사장은 “아버지가 10년간 집대성한 비방을 토대로 탄생한 치료법이 미국에서 인정받게 돼 뿌듯하다”며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대등한 입지를 갖출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의료인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마다 보수교육을 받아 학점을 채워야 한다. 미국 의료인들은 자생한방병원의 한방 비수술 치료법 교육을 이수하면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신 명예이사장은 이를 기념해 지난 6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정골의학콘퍼런스(OMED) 2018’에서 한방 비수술 치료법을 강연했다. 의료인 3만여 명이 참여하는 이 행사에서 한의사로 연단에 선 사람은 신 명예이사장뿐이었다. 그는 “한방 치료의 효능을 알아주고 적극적으로 의료인 교육 현장에 적용한 미국 의료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 의료인 면허는 의사(MD)와 정골의학의사(DO)로 나뉘어져 있다. 2020년 이를 통합할 계획이다. 신 명예이사장이 참석한 OME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국내에선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 때문에 의료 일원화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 명예이사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전통에 대한 가치를 폄하해 식민정치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며 “서양의학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한의학을 비과학적 미신이라고 핍박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신 명예이사장이 평생 공을 들인 한의학의 현대화·과학화는 부친이 힘쓴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 일제시대 잔재를 청산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는 비수술 척추치료법을 표준화하기 위해 대한추나학회를 만들고 자생척추관절연구소도 세웠다. 그는 “현대의학의 본고장인 미국 의사들이 다른 국가의 전통의학도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앞으로 세계 의사들과의 학술 및 기술 교류를 더욱 늘려가겠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