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노동단체들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민간 의료빅데이터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마이데이터 시범사업,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자의무기록(EMR) 공유 사업은 물론이고 민간이 추진하는 의료데이터 사업이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환자 고지나 동의 없이 개인의료정보를 민간과 공유하거나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노동·시민단체가 적시한 의료 빅데이터 사업은 비식별 데이터를 취급하는 데다 연구 목적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 이런 비식별 데이터까지 민간과 공유하거나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막는다면 빅데이터산업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책임 있는 단체라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지, 밑도 끝도 없이 모든 의료빅데이터 사업을 중단하라며 “내 건강정보 팔지 마” “내 허락 없이 의료정보 쓰지 마” 등의 슬로건을 들고나오는 건 선동일 뿐이다.

일부 시민·노동단체들이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유럽연합(EU) 규제를 모델로 삼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빅데이터 경쟁력에서 EU가 비식별 정보 활용이 자유로운 미국 등에 뒤처진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EU가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무기로 내세워 역외 빅데이터 기업들을 견제하려고 하지만, 이는 자국 빅데이터를 육성할 기회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구나 빅데이터 활용이 가져다 줄 소비자 후생까지 감안하면 그 기회비용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의료빅데이터는 빅데이터 중에서도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망 분야로 꼽힌다. 우리의 의료빅데이터로 기업을 키우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가.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비식별 정보의 재식별화 행위에 대해선 그 책임을 엄하게 묻는 방안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보호 위주 개인정보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걸 시민·노동단체들이 인식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