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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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에서 블록체인 개발자들 사이에 탈중앙성 논쟁이 벌어졌다. 블록체인의 특징인 탈중앙화를 얼마나 지켜야 할지가 핵심 아젠다(의제)였다. 탈중앙화를 최우선이라는 쪽과 탈중앙성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실생활에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우선이라는 쪽으로 나뉘었다.

전자에 속하는 개발자들은 완벽한 탈중앙화를 주장했다. 블록체인의 이념에 부합하며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이더리움은 참여자들이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원하는 내용을 언제든 익명으로 기록할 수 있다. 당국과 학교의 검열 탓에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베이징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누군가가 이더리움에 기록해 알린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판문점 선언과 북미정상회담도 이더리움에 기록됐다.

한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가장 큰 장점인 탈중앙성을 훼손한다면 굳이 블록체인을 사용할 이유가 있느냐”고 했다. 블록체인이 신뢰의 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핵심 요소인 탈중앙성이 훼손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믿을 수 없기에 규칙이 되는 코드를 공개하고 모두가 감시해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블록체인”이라며 “성능은 최소한만 확보되면 충분하다. 탈중앙성을 포기할 정도로 초당 거래수(TPS)가 중요하다면 기존의 서버 기반 데이터베이스(DB)를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다. 만우절인 지난해 4월1일 부테린은 이더리움을 권위증명(PoA)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글을 올렸다. PoA방식은 시스템에서 인가된 특정인만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부테린은 이를 ‘거짓말’ 삼아 할 만큼 블록체인에서 탈중앙화를 훼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셈이다.

좀 더 나아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인프라까지 탈중앙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더리움 노드 대부분이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작동하는데, AWS가 서버를 끄면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해킹 당해 무수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례와 비슷하다. 해킹이나 위·변조에 대한 보안성이 높다고 알려진 블록체인의 특성상 매우 적은 확률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반면 실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한다. 블록체인 서비스가 실생활에 쓰이려면 탈중앙성을 다소 희생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한 탈중앙화에 집중하다가 유용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다면? 아무리 순수한 기술이라도 사용자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소용 없다는 논지다.

두나무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표적 사례다. 올해 두나무의 블록체인 연구소 람다256은 PoA 방식으로 블록체인 플랫폼 루니버스를 개발했다. MS의 애저(Azure)도 기업환경을 위한 블록체인 서비스에 PoA 방식을 택했다.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사업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서비스를 구축하거나 제공할 수 없다. 배달앱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주문 하고 리뷰를 쓰는 사람과 주문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의 역할은 구분돼야 한다. 이 경계가 사라지면 사업적으로는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이들 업체가 택한 방식으로 증명도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람다256은 루니버스 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연내 클라우드 방식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다. 이더리움 재단도 이론적 문제를 모두 극복한 이더리움2.0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성능 개선을 위한 샤딩과 캐스퍼 프로젝트도 10만TPS를 낼 수 있는 수준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가까이서 봐야 현실적 고민들이 보인다는 의미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기술발전에 따라 실사용 가능한 서비스가 등장할 시기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반가운 논쟁이다. 소모적 논쟁보다는 좀 더 예각화되고 구체적인 논쟁을 통해 블록체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업계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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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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