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공론화 거쳐 결정된 정책까지 뒤집으면 누가 한국에 투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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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제주 투자개방 병원, 공론화 말고 주민설득할 순 없었나
제주도에 건설된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개원이 무산위기에 처했다. 중앙정부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승인했던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공론화 과정에서 ‘불가’로 뒤바뀌는 첫 사례가 될 판이다.
투자자가 지분에 따라 병원운영 수익금을 배분받을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의료산업의 발전에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이 도입했고, 공산당 체제인 중국도 2002년에 이미 허용했다. 중국의 뤼디(綠地)그룹이 서귀포시에 건립한 녹지국제병원은 ‘한국의 첫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해외에서도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 병원은 처음부터 ‘영리병원’ 논쟁에 과도하게 휘말려왔다.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공공의료가 약화된다”는 보건의료노조와 일부 사회단체의 반대는 그만큼 집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건복지부는 2015년 의료발전 차원에서 이 병원의 사업승인을 내줬다. 이후 부지매입, 직원고용, 건물완공까지 법적 절차에 따랐고, 지난해 8월 현대식 병원이 세워졌다. 그러나 지난 3월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역차원의 공론화로 개원을 결정하겠다”고 했고, 이에 따른 공론화조사위원회가 ‘개설 불허’를 원 지사에게 권고하기로 하면서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778억원이 투자된 사업이 이렇게 좌초되면 누가 한국에 투자를 하려들지 걱정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주민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자세는 좋지만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정책은 제때, 바르게 추진돼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니 시민참여행정이니 하는 명분에 과하게 갇혀 정부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장애’에 빠지면 피해는 국민과 주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나 대학입시 방식 등의 공론화 결정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혼선에서 반성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라는 지위에 맞게 제 역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투자개방형 병원의 필요성이나 장점을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했느냐 하는 문제 제기다. 다른 시·도에 비해 재정과 자치권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더 성실하게 주민 설득에 나서야 했다. 원 지사는 최종 결정에 앞서 이 병원이 외국관광객 유치에 미칠 영향부터 의료발전에 기여하는 부분까지 잘 봐야 한다. 공론화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남기지 않도록 결자해지 차원에서 숙고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0월6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공공의료 명분으로 반대하는 투자개방형 병원
의료서비스 질 높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 기대
중요 사안을 모두 '공론화'에 붙이는 것은 곤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용 창출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로 하는 일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과 반대로 가는 일이 적지 않다.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뤼디국제병원 개원이 무위로 끝나는 과정이 꼭 그렇다.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논의가 처음 시작한 것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였다. ‘동북아시아 의료 허브’ 육성 차원에서였다. 지난해 8월 뤼디국제병원이 완공되기까지 15년간 숱한 논쟁에 논란이 빚어졌다. 처음에는 ‘영리병원 불가’라는 반대논리가 큰 걸림돌이었다. ‘공공의료’라는 기치에 매달리다시피 해온 일부 사회단체와 관련 노동조합은 이 병원을 영리병원이라는 프레임에 담아 저지해왔다. 의료법을 바꾸고(2007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병원 허용조치를 하고(2012년), 정부 승인(2015년)까지 났으나 막판에는 제주도가 막아선 꼴이 됐다.
병상 47개의 소형 병원이지만 의사와 간호사, 국제의료코디네이터 등으로 4개과에서 130명 이상의 전문 인력까지 채용한 상황에서 병원 개원이 막혔다. 이미 투자된 자금만 778억원인 데다 지난해 완공된 이후 약 15개월 동안 인건비를 포함해 매달 8억5000만원의 경비가 지출됐다고 한다. 정부 정책과 관련 법률을 믿고 병원 개원을 준비해온 쪽에서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자칫 국민 혈세로 물어줄 판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장 눈앞의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관련 법규를 준수하며 합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이, 정부 승인까지 난 병원이 중단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외국 자본이 한국으로 투자를 해올 것인가도 숙제로 남게 됐다. 한국의 국제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더구나 ‘투자=일자리 창출’인 시대다. 어느 나라든 투자자라면 국내외 자본을 굳이 구별하지도 않을 정도로 투자 유치는 중요해지고 있다.
사회주의 전통이 여전한 공산당 체제의 중국도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성형외과, 피부과가 중심이 되면서 중국 등지의 의료관광객들도 불러들일 수 있는 병원까지 저지하면서 ‘관광 한국’을 계속 외친다면 무언가 앞뒤가 잘 안 맞는다는 인상을 준다. 주식회사와 비슷한 투자개방형 병원이 저지되면서 ‘의료 빅데이터 활용 방안’ ‘원격진료’ 등도 시행에 어려움이 더 커졌다. 이래저래 의료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들이 많은 게 문제다.
huhws@hankyung.com
제주도에 건설된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개원이 무산위기에 처했다. 중앙정부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승인했던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공론화 과정에서 ‘불가’로 뒤바뀌는 첫 사례가 될 판이다.
투자자가 지분에 따라 병원운영 수익금을 배분받을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의료산업의 발전에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이 도입했고, 공산당 체제인 중국도 2002년에 이미 허용했다. 중국의 뤼디(綠地)그룹이 서귀포시에 건립한 녹지국제병원은 ‘한국의 첫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해외에서도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 병원은 처음부터 ‘영리병원’ 논쟁에 과도하게 휘말려왔다.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공공의료가 약화된다”는 보건의료노조와 일부 사회단체의 반대는 그만큼 집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건복지부는 2015년 의료발전 차원에서 이 병원의 사업승인을 내줬다. 이후 부지매입, 직원고용, 건물완공까지 법적 절차에 따랐고, 지난해 8월 현대식 병원이 세워졌다. 그러나 지난 3월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역차원의 공론화로 개원을 결정하겠다”고 했고, 이에 따른 공론화조사위원회가 ‘개설 불허’를 원 지사에게 권고하기로 하면서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778억원이 투자된 사업이 이렇게 좌초되면 누가 한국에 투자를 하려들지 걱정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주민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자세는 좋지만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정책은 제때, 바르게 추진돼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니 시민참여행정이니 하는 명분에 과하게 갇혀 정부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장애’에 빠지면 피해는 국민과 주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나 대학입시 방식 등의 공론화 결정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혼선에서 반성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라는 지위에 맞게 제 역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투자개방형 병원의 필요성이나 장점을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했느냐 하는 문제 제기다. 다른 시·도에 비해 재정과 자치권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더 성실하게 주민 설득에 나서야 했다. 원 지사는 최종 결정에 앞서 이 병원이 외국관광객 유치에 미칠 영향부터 의료발전에 기여하는 부분까지 잘 봐야 한다. 공론화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남기지 않도록 결자해지 차원에서 숙고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0월6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공공의료 명분으로 반대하는 투자개방형 병원
의료서비스 질 높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 기대
중요 사안을 모두 '공론화'에 붙이는 것은 곤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용 창출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로 하는 일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과 반대로 가는 일이 적지 않다.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뤼디국제병원 개원이 무위로 끝나는 과정이 꼭 그렇다.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논의가 처음 시작한 것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였다. ‘동북아시아 의료 허브’ 육성 차원에서였다. 지난해 8월 뤼디국제병원이 완공되기까지 15년간 숱한 논쟁에 논란이 빚어졌다. 처음에는 ‘영리병원 불가’라는 반대논리가 큰 걸림돌이었다. ‘공공의료’라는 기치에 매달리다시피 해온 일부 사회단체와 관련 노동조합은 이 병원을 영리병원이라는 프레임에 담아 저지해왔다. 의료법을 바꾸고(2007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병원 허용조치를 하고(2012년), 정부 승인(2015년)까지 났으나 막판에는 제주도가 막아선 꼴이 됐다.
병상 47개의 소형 병원이지만 의사와 간호사, 국제의료코디네이터 등으로 4개과에서 130명 이상의 전문 인력까지 채용한 상황에서 병원 개원이 막혔다. 이미 투자된 자금만 778억원인 데다 지난해 완공된 이후 약 15개월 동안 인건비를 포함해 매달 8억5000만원의 경비가 지출됐다고 한다. 정부 정책과 관련 법률을 믿고 병원 개원을 준비해온 쪽에서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자칫 국민 혈세로 물어줄 판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장 눈앞의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관련 법규를 준수하며 합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이, 정부 승인까지 난 병원이 중단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외국 자본이 한국으로 투자를 해올 것인가도 숙제로 남게 됐다. 한국의 국제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더구나 ‘투자=일자리 창출’인 시대다. 어느 나라든 투자자라면 국내외 자본을 굳이 구별하지도 않을 정도로 투자 유치는 중요해지고 있다.
사회주의 전통이 여전한 공산당 체제의 중국도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성형외과, 피부과가 중심이 되면서 중국 등지의 의료관광객들도 불러들일 수 있는 병원까지 저지하면서 ‘관광 한국’을 계속 외친다면 무언가 앞뒤가 잘 안 맞는다는 인상을 준다. 주식회사와 비슷한 투자개방형 병원이 저지되면서 ‘의료 빅데이터 활용 방안’ ‘원격진료’ 등도 시행에 어려움이 더 커졌다. 이래저래 의료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이들이 많은 게 문제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