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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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취임한 강현수 국토연구원장(54)을 만난 곳은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건너편 골목에 자리잡은 ‘어진’이었다. 동해안 해산물 전문점이다. 강원 강릉에서 재배한 채소와 동해안 해물로 강릉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다. 강릉 출신인 강 원장은 “이 식당 음식은 고향집에서 먹던 맛”이라며 “저렴하기까지 해 기회가 될 때마다 찾는다”고 소개했다.

그의 음식 소개와 강릉 음식 자랑은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음식을 내오던 식당 주인이 설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식전 음식으로 감자전이 나왔다. 일반 감자전에 비해 두 배 정도 두툼해 보였다. 입에 감자전을 넣자마자 잔뜩 기대되는 표정으로 “맛이 어떠냐”고 재촉하듯 물었다. 느낀 그대로 “씹는 맛이 있고 담백하다”고 답했다. 그는 “강원도산 품질 좋은 감자를 갈아 아낌없이 넣었기 때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서울 집값 잡기 어려운 이유는 수도권 집중

감자전을 즐기면서 서울 집값 전망부터 물어봤다. 강 원장은 “서울 주택시장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 수요 초과 시장”이라며 “서울 주택 수요에 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서울 집값을 잡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는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를 분산해야 한다”며 “다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원장에 따르면 작년부터 수도권 인구가 다시 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균형발전 정책의 약효가 끝나서다. 그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몰리는 상황에서 집값을 잡기는 쉽지 않다”며 “지방 자생력을 키우는 방식의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취미생활, 자연환경 등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일부에선 탈(脫)대도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강원 제주도 등의 교육 여건을 확충하면 자연스럽게 지방으로 인구가 분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 주거지를 고밀도 개발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강 원장은 “현재 서울 재건축·재개발 용적률이 300%에 달한다”며 “세계적으로 봤을 때 서울 주거지역은 지나치게 고밀도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상업·업무지역을 고밀도 개발해 주거시설을 일부 넣는 것에는 찬성 의견을 냈다. 강 원장은 “서울은 기형적으로 업무지구가 저밀도로 개발되고, 주거지역이 고밀도로 개발되고 있다”며 “업무지구를 고밀도 개발하면 주택 공급을 늘리고 도심 공동화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새치구이와 도치알탕이 나왔다. 도치는 심술궂게 생겼다. 강원도에선 ‘심퉁이’라고도 불린다. 젤라틴이 풍부해 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톡톡 씹히는 맛이 독특하면서도 국물이 시원했다. 먼바다에서 잡히는 임연수어와 비슷하게 생긴 새치는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생선이다. 강 원장은 “강원도에서는 새치 껍질을 먹다가 기와집을 날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생선”이라며 노릇하게 구운 새치 한 점을 하얀 쌀밥에 얹어줬다. 껍질은 바삭한데 살은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서울주택시장, 만성적 공급 부족…지역균형 발전으로 수요 분산 해야"
국민 눈높이에 맞춘 연구 집중

강릉 출신이 충남연구원장을 맡게 된 사연을 물어봤다. 강 원장은 “고향은 충남이 아니지만 충남 금산에 있는 중부대에서 20여 년간 교수로 재직했으니 충청 사람이 다 됐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충남도청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자문활동을 한 인연으로 충남연구원장이 됐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시의성 있는 ‘충남리포트’ 발간을 확대했고, 연구 결과를 도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충남 인포그래픽’과 ‘충남 정책지도’를 새로 발간했다. 가독성이 높아진 자료를 만들자 연구 자료를 활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충남연구원장 재직 5년 동안 이끌어낸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강 원장은 2018년 국토연구원장에 발탁됐다. 그는 “전국 단위의 한 차원 높은 연구를 하고 싶었다”며 “국가적 차원의 국토전략을 연구하고 체계적인 국토정보를 구축하며 한반도 전체 국토계획을 국토연구원에서 연구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용성이 높은 연구에 집중해달라고 국토연구원에 주문하고 있다. 강 원장은 “국토 분야 최고 국책기관으로서 국토연구원은 국토종합계획, 신도시계획, 토지공개념 정립, 그린벨트 정책 등 대한민국의 굵직한 국토분야 정책 연구를 수행해왔다”며 “다만 국민이 원하고, 알고 싶은 정보를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전달하는 것은 다소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토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올해가 국토연구원 설립 40주년이 되는 해”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수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은 내년에 발표할 제5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강 원장은 “개발시대, 고성장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인구 감소와 기후 변화, 남북한 화해시대 등 우리나라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이에 맞춰 기후 변화에 따른 국토정책, 한반도 전체 국토 비전, 인구 감소시대의 지역 발전 방향 등을 제5차 계획에 담으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한반도 전체 국토 비전과 관련해선 “북한 관련 연구를 많이 했지만 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우리만의 구상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교통, 산업단지 등 북한의 구상을 들어보고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폭염 혹한 등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지역 중심에 폭염·혹한 대피센터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했다. 강 원장은 “태양광 지열 등을 활용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시설을 세울 수 있다”며 “더위와 추위에 취약한 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도 나누고 추위와 더위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도시 발전 연구에 여생 바칠 것”

그의 인생 여정은 변신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공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전공은 산업공학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회현상을 숫자로 계량화하는 방법론에 재미를 못 느꼈다. 인생의 변곡점은 대학원에 진학할 때 찾아왔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던 철거와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도시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했고 도시 및 지역계획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강 원장은 “도시문제뿐만 아니라 갈수록 낙후돼가는 강원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킬까를 고민했다”며 “그때부터 평생 도시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충남 지역 현안을 연구하는 충남연구원장이 된 것도 큰 변신이었다. 시·도 연구원의 원장은 그 지역 출신이 맡던 기존 틀을 깼다. 충남연구원장 5년 경력으로 대한민국 전체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종합개발계획에 대한 연구를 총괄하는 국토연구원장에 발탁됐다. 연구원 출신 가운데 선발되던 자리에 시·도 연구원 원장이 임명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현장에 뿌리를 둔 시·도 연구원과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협력을 통한 효율적인 연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집값 상승 등 당면한 국가적 문제도 결국 지역 균형 개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지역균형발전론자답게 ‘인생 2막’도 강릉에서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학교로 돌아가 도시 및 지역계획을 연구한 평생의 경험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싶다”며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뒤엔 강릉으로 귀향할 생각”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강릉에서 비(非)수도권 중소도시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계속 연구하고 싶다”며 마지막 남은 한 숟갈을 싹 비웠다.

■국토연구원은…

국토연구원은 1978년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국토자원의 효율적인 이용·개발·보전에 관한 정책을 연구해 국토 균형 발전과 국민생활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게 설립 목적이다. 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 도시연구본부, 주택·토지연구본부, 국토인프라연구본부, 국토정보연구본부, 기획경영본부 등 6개 본부와 글로벌개발협력센터로 구성돼 있다. 국토종합계획 수립, 국토의 이용과 보전, 지역 및 도시계획, 주택 및 토지정책, 교통, 건설경제, 환경, 수자원, 공간정보 등 국토 전반에 걸쳐 폭넓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1964년 강원 강릉 출생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1989년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
△1995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1992년~ 중부대 교수(휴직 중)
△2003~2006년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2010년 8월~2013년 7월 한국공간환경학회장
△2013~2018년 충남연구원장
△2017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서울주택시장, 만성적 공급 부족…지역균형 발전으로 수요 분산 해야"
■강현수 원장의 단골집 어진
강릉서 가져온 제철 수산물…도루묵 등 계절 별미 으뜸


강원 강릉 출신인 조영정 사장이 2007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건너편에 문을 연 동해안 해산물 음식점이다. 상호는 ‘착하고 어질게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어진으로 지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서울주택시장, 만성적 공급 부족…지역균형 발전으로 수요 분산 해야"
도루묵, 오징어물회, 곰치국, 오징어통찜 등 동해안에서 제철에 잡은 생선을 맛볼 수 있다. 봄에는 멸치, 여름에는 물회, 가을에는 전어회, 겨울에는 도루묵·도치숙회 등이 별미다. 요즘 인기 메뉴인 도루묵은 추석부터 설까지가 제철이다. 곰치국 망치매운탕 등은 연중 맛볼 수 있다.

강릉에서 직접 재배한 감자와 무로 조리한 밑반찬도 인기 있다. 강원 출신 단골손님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충분한 양을 확보해놓고 있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이다. 도루묵찜 3만~4만원, 도루묵구이 3만원, 도치알탕 2만5000원, 망치매운탕 2만5000원, 물회 1만5000원, 곰치국 1만7000원.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