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노미에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고기와 술을 저렴하게 즐길수 있다.
다치노미에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고기와 술을 저렴하게 즐길수 있다.
일본 도시에서 길을 가다가 노렌(포렴, 일종의 간판 역할을 하는 천막) 아래로 서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일 때가 있다. 침이 고인다. ‘다치노미’ 술집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술을 안 파는 국숫집일 때도 있지만 알코올 분석기를 코에 달고 다니는 필자가 모를 리 없다. 다치노미는 문자 그대로 ‘서서 마신다’는 뜻이다. 선 채로 한두 잔 마시면서 간단한 안주를 먹는다. 다치노미의 특징은 값이 싸다는 것이다. 서서 마시니 좌석을 오래 점유하지 않는다. 회전이 빠르다. 안주가 간단하면서도 싸다. 다치노미가 많이 있는 위치도 대개는 뻔하다. 역 앞, 술집 골목이다. 역 앞의 위치는 두 곳이다. 우선 시내다. 퇴근할 때 그냥 가기 섭섭하니까 한잔하면서 요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동네 역 앞이다. 집에 다 왔다, 그러나 술이 모자란다, 딱 한잔만 하자, 이런 마음으로 가볍게 들어선다. 물론 이게 ‘기폭제’가 돼서 고주망태가 될 수도 있지만.

서부시대의 바와 같은 다치노미

푹 익은 무(위)와 된장소스를 뿌린 고래 껍질
푹 익은 무(위)와 된장소스를 뿌린 고래 껍질
사다오 쇼지라는 일본의 유명한 음식평론가가 있다. 그는 다치노미를 ‘서부시대의 바’라고 정의했다. 맞다.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보던 그런 바의 풍경. 일본은 거품 경기가 꺼지면서 다치노미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1988년에 헤이세이 연호가 시작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불황은 가벼운 술집의 번성을 불렀다. 1999년 요미우리신문은 다치노미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불황의 여파였다.

술집 골목은 다치노미가 번식(?)하기 좋은 곳이다. 이런저런 술집에서 마시고는 ‘딱 한 잔 더’ 마시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일행과 헤어져 쓱 들어가 선 채로 마시면 된다. 다치노미는 요즘 일본에서 다시 크게 유행하고 있다. 1990년대 거품이 꺼지고 불황이 오면서 다치노미가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크게 성행했다. 주머니돈이 없고, 회식 문화가 줄어들면서 싸게 한잔 마실 곳이 필요했다.

퇴근길 '딱, 한잔' 분위기로 먹는 다치노미…하몽에 샴페인, '클럽 바'로 진화중
호황기 일본의 회식, 접대문화는 대단했다. 접대비를 경비 처리해주는 폭이 넓었고 관행이었다. 흥청망청 마셨다. 회식 후 부장이 1만엔(약 10만원)씩 택시비를 쥐여주는 게 흔했다. 물론 회삿돈이다. 초고가의 식당이 번성했다. 마치 한때 서울 역삼동에 두당 20만원, 30만원씩 하는 횟집이 바글바글했던 것처럼. 가격표 없는 스시집이 속속 생겨났고 두당 3만엔, 4만엔짜리 스시집이 긴자 빌딩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거품 경기의 초상이었다. 거품이 꺼지자 일본인들은 체념도 빨랐다. 마시기는 하되, 간단히! 1차만 하고 헤어지는 게 관례가 됐다. 2차는 어디로? 이때 다치노미가 대안이었다. 원래 일본인들은 다치노미의 선구자다. 에도시대에 이미 시내 전체가 다치노미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튀김이나 스시를 파는 포장마차가 길에 쭉 늘어서 있었다. 당시는 화재 위험 때문에 불을 쓰는 음식점을 가게로 들이지 못하게 했다. 자연스레 길거리 포장마차의 형태로 영업했다. 당연히 손님도 서서 먹었다. 싸구려(?) 참치스시를 길에서 먹고, 꼬치요리에 청주를 마셨다. 참치가 싸구려였다는 건 실제 얘기다. 에도시대 초반만 해도 참치는 하급직이나 먹는 생선이었다고 한다. 사무라이가 참치를 먹으려면 누구에게 들킬세라 구석에서 몰래 먹었다고 한다. 위신이 추락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클럽 같은 분위기의 다치노미, 젊은이에게 인기

서서 혼술을 마시는 사람들
서서 혼술을 마시는 사람들
다치노미는 불황기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불황을 벗어나 심지어 완전 고용이라고 하는 요즘에도 다치노미는 더 많아지고 있다.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다치노미는 오지상(아저씨라는 뜻)들이 좋아했다. 복고의 느낌이 강한 술집인 까닭이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다치노미는 아주 세련된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많다. 젊은 셰프와 잘생긴 서버들이 있다. 원래 다치노미는 나이 든 부부가 생계로 오랫동안 경영하며 전형적인 계절 안

를 만들어내는 곳이 많다. 그러니 손님도 그런 부부의 스타일과 비슷한 오지상이 오게 마련이다. 안주도 과거의 뻔한 메뉴에서 벗어나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것들이 잘 팔린다. 특히 서양식 다치노미, 즉 스탠딩 바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주 많아졌다. 하몽을 즉석에서 쓱쓱 썰어 팔고, 나마비루(생맥주) 대신 샴페인을 멋지게 들고 마시는 세련된 도시 남녀들의 사교장 분위기가 난다. 안주도 대개는 서양식,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식이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의 스테이크, 크로켓, 타파스 등이 주요 안주다. 흥미로운 건 일본의 다치노미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계절마다 일본식 안주가 늘 있다. 여름에는 전통적으로 먹는 물가지소금절임, 겨울에는 작은 냄비요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다치노미 메뉴판
다치노미 메뉴판
일본 오사카의 유흥가 덴마지구. ‘토토리사카바’. 밤 10시. 젊은이들로 꽉 차 있다. 다치노미는 맞는데, 마치 클럽 같은 분위기. 손님들끼리 대화하고 있다. 안면이 있는 경우도 있고, 서로 모르는 사이가 더 많다. 내게도 말을 건다. 이 집 안에서는 모두가 친구다. 마음을 터놓고 술 한잔을 나눈다. 신세대의 술 마시고 사교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시간이 깊어가면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린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주인은 손님과 연신 건배를 한다. 이런 다치노미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가격이 싸고, 분위기도 흥겨우며, 하룻밤에 여러 곳을 들러서 즐길 수 있는 까닭이다. 보통 바 호핑이라는 말이 있다. 바를 여럿 옮겨 다니며 즐기는 행위다. 일본에서는 하시고자케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번화가 술집 골목에는 다치노미가 수십 개 이상 영업하고 있어서다. 각각 다른 안주와 분위기를 즐긴다. 혼자 왔다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오히려 환영한다). 술을 조금 마신다고 눈치주지도 않는다.

딱 한 잔에 안주 한 개만 시켜도 굿. 게다가 값이 말도 못하게 싸다. 청주 한 잔이 200~300엔(약 2000~3000원), 요새 인기 있는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를 탄 것)이 400엔 정도, 생맥주도 300~400엔. 앉아 마시는 가게보다 30~40% 싸다. 안주도 양은 적지만 맛과 재료가 충실한 집이 많고 가격도 보통 300~500엔대다. 이런 식으로 서너 집을 다녀도 1인당 3000~4000엔이면 충분하다.

동전으로 계산하고 혼자 마시는 이들 많아

한잔의 술과 인생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다치노미의 테마다.
한잔의 술과 인생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다치노미의 테마다.
같은 덴마지구의 고깃집(야키니쿠) ‘전격호루몬츠기에’. 호루몬은 내장을 뜻하지만 고기도 같이 파는 야키니쿠집이라고 보면 된다. 특이하게 이 집도 다치노미로 분류된다. 엄청난 고기 굽는 연기가 실내를 가득 채운 가운데 서서 술을 마신다. 잘 차려 입은 젊은 남녀들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냄새에 아주 민감해 방취제 시장이 세계 1위라는 일본에서 고기 굽는 연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련된 남녀가 이곳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치노미의 멋이랄까, 다들 개의치 않아요. 미리 각오를 하고 온다니까요.”(야마다 시게오·38)

다치노미는 동전으로 술값을 치르는 오랜 관습이 있다. 물론 상징적이며, 지금은 필수적인 건 아니다. 일본의 최고액 동전은 500엔. 2개면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 술 두 잔에 안주 두 개를 먹으면 더러 거스름돈을 받는다. 일본의 안주류는 양이 적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치노미의 유행 중에 히토리노미라는 게 있다. 다치노미집을 소개하는 잡지기사에는 특별한 항목이 있는데 ‘혼자 마시는 사람의 비율’이다. 그것이 다치노미의 어떤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7~8할에 육박하는 집도 있다. 대개 오래된 집이고 손님층도 장년층이 많다. 이런 집에 가면 거의 수도(?)나 명상하는 분위기다. 각자 술잔과 안주를 놓고 상념에 빠져 있다. 입심 좋은 주인이 아닌 경우에는 정말 가게가 고요하다.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라도 나오지 않으면 침묵 속에 기도하는 종교시설 같다는 착각도 불러온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선술집 유행하기도

혼자 마시기와 함께 다치노미의 중요한 컨셉트가 하나 있다. 바로 낮술이다. 낮에 쉴 수 있는 직종이라든가 노년층이 주로 애용한다. 시내보다는 동네 거점(역 앞)에 있는 다치노미가 주로 낮술을 판다. 일본인은 낮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하다. 낮에 마시는 술은 남다른 스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쿠시마역(방사능이 터진 후쿠시마현이 아니라 오사카시의 한 지역) 앞 ‘토라야’라는 다치노미. 고노 요이치 씨(45)는 낮술을 즐기러 이곳에 종종 온다. 휴무인 날의 늦은 오후, 150엔짜리 안주에 싸구려 청주를 데워 마시면서 술과 안주에 몰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완벽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입니다. 아, 물론 이때 모이는 사람들은 다 안면이 있어서 진짜 자유가 아닐 수 있습니다만.(웃음)”

원래 다치노미의 유행은 주류상과 관련이 있다. 주류 도매상이 옆문을 하나 터서 가게 안에 술을 파는 자리를 마련하고 영업한 것이 시초.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영업 허가가 가능하다. 이때 탁자는 청주나 맥주 상자를 쌓아서 마련하는 게 보통. 술안주는 봉지에 나오는 제품이나 캔을 썼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집이 많다. 이런 형태를 가쿠우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원은 알 수 없는데, 아마도 술 상자의 모서리에 각이 져 있어서 그런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가쿠우치는 다치노미 중에서도 가장 저렴하고 분위기가 소박한 형태다.

퇴근길 '딱, 한잔' 분위기로 먹는 다치노미…하몽에 샴페인, '클럽 바'로 진화중
우리나라에도 이런 다치노미, 선술집이 있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정도에 유행했다. 이름도 선술집이었다. 다치노미를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고유의 술집 문화였는지 알 수 없다. 바쁘게 한잔 먹고 갈 수 있는 집이므로, 당시 한양의 주요 지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영업 형태였으니 일본의 영향과 관계없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가 성숙기에 들어선 이후에는 일본식 술집이 대세가 되면서 조선식 술집은 주로 목로가 차지했다. 목로는 나무판을 의미하는데, 이런 판에 미리 만든 안주를 진열하고, 손님도 그런 목로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목로주점의 탄생이다. 이런 목로에 안주만 진열하고 손님은 서서 마시기도 했을 것 같은데, 역시 충분한 사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