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 회장/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 회장/사진=연합뉴스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이 상속세 탈루,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6부(김영일 부장검사)는 15일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검찰이 지난 5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며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조 회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석기업 대표 원모(66)씨 등 3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은 일가 소유인 면세품 중개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걷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 무역 등 명의로 196억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겨 대한항공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법상 배임)를 받는다.

검찰은 또 이른바 세 자녀의 '꼼수' 주식 매매 의혹에 대해서도 특경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조 회장은 2014년 8월 조현아·원태·현민씨가 보유한 정석기업 주식 7만1천880주를 정석기업이 176억원에 사들이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 대상이 아님에도 이를 반영해 정석기업에 약 41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또 2009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모친 고(故) 김정일 여사와 지인 등 3명을 정석기업의 직원으로 올려 20억여원의 허위급여를 지급한 혐의(특경법상 배임)도 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 처남 취업청탁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의 변호사 비용과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때 맏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변호사 비용 등 총 17억원을 회삿돈으로 내게 한 혐의(특경법상 횡령)도 받는다.

이와 같은 조 회장의 특경법상 횡령·배임 규모는 총 2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 회장은 또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인근에서 '사무장 약국'을 열어 운영한 혐의(약사법 위반 등)도 받는다.

조 회장은 2010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고용 약사 명의로 약국을 운영하고, 정상적인 약국으로 가장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 등을 부정하게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조 회장이 약국 개설을 주도하고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등 약국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행법상 약국은 약사 자격증이 없으면 개설할 수 없다.

검찰은 이 약국 약사 이모(65·여)씨와 이씨의 남편 류모(68)씨도 약사법 위반과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2014∼2018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때 공정거래위원회에 거짓 자료를 제출한 혐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는다.

조 회장은 아내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동생이 소유한 회사 등 10개 사를 한진그룹 계열사에서 제외하고 처남 가족을 비롯한 114명을 친족 현황에서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상속세 포탈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조 회장을 불기소 처분했다.

남부지검은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 4월 30일 조 회장을 수백억 원대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조 회장이 선친 소유의 프랑스 현지 부동산과 스위스 은행 계좌 잔액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세 약 610억 원을 포탈했다는 특가법 위반(조세)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2014년 3월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다만 검찰은 조 회장을 비롯해 조 회장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선친의 스위스 예금 채권(약 450억원)을 상속했음에도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각자의 상속분을 과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해외 상속계좌를 미신고한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에 대해서는 각각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통상 이 정도 규모의 다른 사안을 검토했을 때 약식명령 처분을 내린 경우가 많았다"며 "다만 조양호 회장은 다른 혐의가 많아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 데 대해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다각도로 보완조사를 했으나, 추가 확인된 범죄사실이 영장 청구 범죄사실과 비교해 크게 중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2일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에도 공소시효 등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상속세 탈루 혐의는 영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또 조 회장에 대한 늑장 수사 의혹도 일축했다.

검찰 관계자는 "2015년부터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한진 일가와 관련 수상한 자금 흐름이 있다는 자료를 받아 분석해왔다"면서도 "다른 고발 사건 등으로 혐의가 계속 늘어나면서 수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