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사들은 글로벌 선박 설계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확대해야 합니다.”

"韓 조선업, 가격경쟁 대신 고부가 선박으로 승부해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선박 설계 회사 씨텍솔루션의 고바인더 싱 조프라 최고경영자(CEO·64·사진)는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보다 건조 비용이 20% 이상 저렴한 중국 조선소를 가격 면에서 꺾기는 쉽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0~1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플랜트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조프라 CEO는 한국 조선사들이 설계부터 엔진, 조립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는 수직 계열화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조선업은 건조 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선주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반영해야 하는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에는 약점을 갖고 있다”며 “설계 등 해외 업체가 앞선 부분은 과감하게 수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과 인건비가 낮은 동남아시아 근로자를 영입해 원가경쟁력에서 한국을 앞선 싱가포르 등과의 가격 경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1기당 가격이 1조원을 웃도는 해양플랜트(원유 및 가스 생산·시추 설비) 등은 가격보다는 상품성과 품질 등 제조경쟁력이 수주를 좌우한다는 이유에서다. 제품(선박) 특성상 조선업은 고객(선주) 친화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가격이 수천만~수억원 수준인 자동차는 소비자가 없더라도 생산할 수 있지만 수백억원을 웃도는 선박은 고객이 확보돼야 제작을 시작할 수 있다”며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일정한 틀로 선박을 찍어내는 과거의 경영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조프라 CEO는 1975년 인도공대(IIT)를 졸업한 뒤 인도 해군과 조선사 등에서 선박 설계 업무를 하다 2000년 씨텍솔루션을 창업했다.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300여 척의 특수선 설계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등 아시아 8개국에 지사도 두고 있다. 중국 푸젠성 마웨이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세계 최초의 해저 광물 탐사·채굴선 설계를 맡기도 했다. 한 척 가격이 6000억원으로, 대표적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2000억원)의 세 배에 달한다. 선박 시장의 원조격인 유럽과 미국에 지사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조프라 CEO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는 조선 관련 연구개발(R&D)부터 자금 조달, 법률적인 사항들까지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어 조선산업의 신흥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며 “한국 조선업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R&D와 생산시설, 금융회사 등을 한곳에 모은 클러스터(산업집합단지)를 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보형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