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서울과 경기 일대의 3등급 이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의 일부 해제를 검토 중인 가운데 서울시가 등급에 따른 획일적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훼손된 3~5등급 그린벨트 내에서도 보존이 필요한 비오톱(biotope·생물서식공간) 1~2등급지가 다수 분포해 있어 현실적으로 해제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연말로 예고된 ‘3기 신도시’ 발표를 둘러싼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 "생물서식지 '비오톱' 1·2등급 섞여 보존 필요"
◆“비오톱 1~2등급 분포…해제 어려워”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3등급 이하 그린벨트가 29.0㎢다. 서울 전체 그린벨트의 21% 규모다. 국토부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지침에서 1~2등급은 원칙적으로 해제를 못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3등급 이하는 필요한 절차를 거쳐 해제할 수 있다. 국토부는 서울시와의 합의점을 찾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장관 직권 해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내부 회의를 열고 그린벨트 3~5등급지 해제에 따른 영향을 검토했으나 비오톱 기준에 걸려 불가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그린벨트 3~5등급지 내에 비오톱 1~2등급지가 다수 분포해 있어 해제가 어렵다”며 “시 조례에 따르면 비오톱 1등급에 해당하는 지역은 일체의 개발행위가 금지된다”고 밝혔다.

비오톱은 특정 생물군집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2010년부터 지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3~5등급 그린벨트에서도 비오톱 1~2등급지가 다수 분포해 있다”며 “업계에서 해제 유력지로 거론되는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 일대가 대표적인 비오톱 1등급 분포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오는 22일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이 같은 상황을 공개할 예정이다.

◆“3~5등급 그린벨트, 1~2등급 보호막”

서울시는 또 그린벨트 중 환경평가 3~5등급지가 1~2등급지를 보호하는 완충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제 시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국토계획법에 명시돼 있듯 그린벨트 지정 취지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 방지,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 보호 등 도시환경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며 “단순히 훼손돼 보전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해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부의 그린벨트 관리지침에는 대규모 도시·환경문제를 수반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해제 대상 지역에서 반드시 제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는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관리지침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이 집값 안정에 미치는 효과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의회 의원들도 그린벨트 해제에 부정적이다. 김인제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구로4)은 “3~5등급지 중 일부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해제하고 택지 공급에 따른 토지보상금을 지급하면 학습효과가 발생한다”며 “다른 그린벨트 지역도 소유자에 의한 인위적인 훼손 또는 방치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또 “상임위 소속 의원 대부분이 그린벨트 해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며 “개인적으로 그린벨트 해제보다는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훼손된 그린벨트 해제보단 회복이 시급”

서울시는 3등급 이하라 해도 비닐하우스, 경작지는 생태 회복이 가능하지만 택지로 개발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훼손지 회복 노력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재원 확보 및 중앙·지방정부 간 협의 중심의 정책결정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 훼손에 대한 서울시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에는 “불법행위 적발 시 경고 조치와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하고 있지만 사유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비닐하우스 및 경작지는 용도가 전·답일 경우 합법적이며 이를 모두 훼손 행위라고 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비오톱(biotope)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 또는 영역이라는 의미의 ‘토포스(topos)’를 결합한 용어. 특정 식물과 동물들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뤄 생존할 수 있는 생물서식지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총 5개의 등급으로 비오톱 유형을 구분해 지정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제24조에 따라 비오톱 1등급지에 대한 일체의 개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