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통업체 시어스의 지주회사인 시어스홀딩스가 15일(현지시간) 뉴욕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시어스백화점과 대형마트 ‘K마트’를 보유하며 한때 미국 최대 유통업체로 군림하던 시어스가 설립 126년 만에 쓸쓸한 퇴장 절차를 밟고 있다.

2011년부터 7년 연속 순손실을 낸 시어스의 부채는 113억달러(약 12조7543억원)에 달한다. 한때 3800여 개에 달했던 시어스·K마크 매장은 687개만 남았다. 2007년 주당 195달러였던 주가는 41센트까지 곤두박질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시어스의 파산 소식을 들은 뒤 “내가 어렸을 적 시어스는 엄청난 존재였다. 매우 슬픈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시어스는 1970년대 미국 전역에 3500개 점포를 운영하던 최대 유통업체였다. 1886년 리처드 시어스가 우편으로 시계를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1892년 본격적인 배송사업에 나서며 유통기업으로 거듭났다. 이후 의류, 장난감, 자동차, 주택건축 등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세기 아마존' 시어스, 끝내 파산 신청…그들의 세 가지 패착
시어스가 파산으로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는 유통업계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전체 쇼핑 매출은 4.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중 온라인 쇼핑 매출은 16% 늘었다. 시어스, JC페니, 메이시 등 쇼핑몰은 아마존과 이베이 등 신흥 온라인·모바일 파워에 속절없이 시장을 내줘야 했다.

포천은 시어스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며 “기업이 거대한 관료 조직으로 변하면서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보다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만 몰두했다”고 지적했다. 경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90년대 초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월마트·타깃 등 대형 할인마트가 등장할 당시 여러 언론매체는 이를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소개하며 유통시장이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시어스 경영진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월마트가 양질의 제품을 파는 시어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이를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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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유통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나올 때도 시어스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헛발질’로 일관했다. 멤버십을 이용해 소비자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보를 제공하면 소비자가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 매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판단했다. 시어스의 최대주주기도 한 램퍼트 회장은 이번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딴눈’을 판 것도 패착 원인으로 꼽힌다. 시어스는 1970년대 저출산 고령화라는 미국 인구 구조 변화를 고려해 금융 서비스사업에 진출했다. 고령화에 따라 소비가 줄고 저축이 늘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사업은 부진했고 1980년대 인수한 다수의 증권회사와 직접 설립한 생명보험사들은 1990년대 모두 매각 처리됐다.

시어스 경영진은 파산보호 신청을 통해 재기를 노려보겠다는 의지다. 한때 30만 명이 넘던 직원을 7만 명으로 줄였고, 자산 매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부채 때문에 회생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1955년 ‘포천500’지수가 처음 발표됐을 때 포함됐던 기업 중 보잉, 제너럴모터스(GM)는 남았지만 시어스는 이미 사라진 나머지 90%의 기업과 같은 운명의 코스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