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 폴 앨런(왼쪽)과 빌 게이츠의 모습.  /한경DB
창업 초기 폴 앨런(왼쪽)과 빌 게이츠의 모습. /한경DB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폴 앨런이 15일(현지시간) 암 투병 중 6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3년 혈액암이 발병했던 앨런은 이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최근 같은 유형의 암인 비호지킨림프종이 재발했다고 밝힌 가운데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미국 시애틀 출신으로 사립학교를 함께 다녔던 앨런과 게이츠는 1975년 시애틀 인근 벨뷰에서 MS를 창업했다. 당시 워싱턴주립대를 다니던 22세의 앨런은 PC 시대가 올 것을 확신하고 세 살 어린 하버드대생 게이츠를 부단히 설득해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사업에 매진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 두 사람이 개발한 제품이 PC 기본 운영체제(OS)인 MS ‘도스(DOS)’. 1980년 당시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인 IBM이 PC OS로 MS 도스를 채택하면서 둘은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MS는 최대 컴퓨터 OS 회사로 성장했다. 도스에 이어 내놓은 윈도 등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앨런과 게이츠는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앨런 별세…빌 게이츠와 '윈도 신화' 일궈낸 '아이디어 맨'
두 고교 동창의 상반된 성격은 창업 과정에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했다. 승부욕이 강한 게이츠와 달리 앨런은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성격이었다. 앨런은 자신을 ‘아이디어 맨’으로, 게이츠를 ‘타고난 사업가’로 지칭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를 합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명도 앨런의 머리에서 나왔다. 2011년 낸 앨런의 회고록 《아이디어 맨》에서 그는 “우리의 성공은 나의 비전과 게이츠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업 감각이 결합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둘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분 문제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앨런은 창업 당시 지분을 반씩 나눌 것으로 기대했지만, 게이츠는 자신의 역할이 더 컸다며 지분 60%를 요구했다. 1977년 게이츠는 다시 64%로 자신의 지분율을 높였다. 계속된 갈등으로 지쳐가던 앨런은 1983년 혈액암 진단을 받자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2000년까지 MS 이사회 멤버로 있었고, 수석전략 고문을 맡는 등 회사에 애정을 보였다.

앨런은 MS에서 쌓은 부(富)를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자선사업, 스포츠구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86년 투자회사 벌칸을 세워 통신, 기술, 부동산 등에 투자해왔다. 수십년간 항공우주 등 신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했고, 2004년에는 최초의 민간 유인우주선 스페이스십 1호를 발사시켰다. 스포츠광이었던 앨런은 1988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미국프로농구(NBA)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인수해 3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연소 구단주가 됐다. 미식축구리그(NFL) 시애틀 시호크스와 시애틀 사운더스 축구팀 구단주이기도 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기리는 박물관도 건립했다. 지난 8월 기준 그의 자산은 202억달러(약 23조원).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 44위에 이름을 올렸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