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욱 휴넷 회장 /사진=최혁 기자
권대욱 휴넷 회장 /사진=최혁 기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권대욱 신임 휴넷 회장(67)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광고 카피다. 평생을 건설업에 종사한 뒤 호텔 사장으로, 이번엔 평생교육 전문기업의 수장을 맡게 됐다. 그는 자신을 ‘드리머’(Dreamer)라고 했다. 45년 직장생활 중 33년을 사장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눈이 반짝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67세라는 나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만난 권 회장은 “교육을 통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사명을 갖고 휴넷에 오게 됐다”면서 “상품을 파는 것은 영업맨에 불과하다. 우리는 행복을 파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권대욱 회장이 몸담게 된 휴넷은 1999년 조영탁 대표가 설립한 평생교육 전문기업이다. 직장인과 기업에 필요한 실용적 경영지식을 온라인과 모바일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휴넷에 대해 “3배는 더 커져야 하는 회사”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휴넷이 가진 잠재력을 높이 샀고, 아코르 앰배서더 사장직을 놓고 휴넷에 둥지를 텄다. 그는 “‘전략통’ 조영탁 대표와 ‘영업통’인 제가 만나 시너지를 낼 것”이라며 “평소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45년간의 직장생활 중 12년을 빼놓고 ‘사장님’이었다. 1986년 갓 35세에 한보건설 사장을 달고, 2005년 호텔 서교 하얏트 리젠시 제주 사장, 가장 최근에는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을 역임했다. 권 회장은 자신의 이력을 두고 “사람의 운명은 예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권 회장은 “건설은 리스크가 큰 수주 산업이다. 사람을 만나면 내게 일을 줄 사람, 일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 일을 준 사람이 고객이다. 개인의 삶과 일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호텔에 오니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잠재 고객이더라. 일이냐 삶이냐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휴넷에 오니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전 인류가 교육의 대상 아닌가. 모든 기업이 교육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목적지와 휴넷이 추구하는 기업 방향인 ‘행복 경영’은 발걸음을 같이 한다. 그는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비욘드 워라밸’ 시대가 왔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 속에 삶이 있다. 탁월한 사람들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한다. 오로지 탁월함만을 추구할 뿐이다. 삶과 일이 녹아 있는 기업 문화로 바뀌어야 좋은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회장의 이같은 열정은 그가 출연했던 ‘청춘 합창단’에서 엿볼 수 있다.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청춘 합창단에 합류한 권 회장은 현재까지 8년째 단장으로 단원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청춘 합창단이 없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합창단은 인생의 활력소”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인생에서 예술적인 취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행복의 매커니즘은 몰입과 망각이죠. 우리가 몰입하는 순간, 사념들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께서 합창을 만들고 단장인 나는 청춘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시니어 합창단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권대욱 휴넷 회장과의 일문일답.

“교육은 마지막 사명, 전략통 조영탁 대표와 시너지 낼 것”
권대욱 휴넷 회장 /사진=최혁 기자
권대욱 휴넷 회장 /사진=최혁 기자
▶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를 뒤로하고 교육기업 휴넷에 새 둥지를 틀었다.

최근 앰배서더에서 퇴임식을 했는데, 45년 직장생활의 결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제 능력을 제공하고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직장 생활이었다면 지금은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회사에서 차도 주고, 급여도 준다. (웃음)

▶ 휴넷과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 이유가 있다면.

조영탁 휴넷 대표와 2년 전 페이스북에서 알게 됐다. 추구하는 기업 방향부터 휴넷이 추구하는 행복경영까지 제 생각과 잘 맞아떨어졌다. 조 대표가 사단법인 ‘행복한 경영’을 만들 때 이사 등록 요청을 받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인연이 됐다. 평소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해왔다. 휴넷과 같은 행복한 기업 문화를 전파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휴넷에서 목표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나.

조 대표는 탁월한 전략가고 기획가다. 그런데 경영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휴넷웨이’를 만든 생각이 늘 앞선 CEO다. 잠재력을 보면 휴넷은 3배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휴넷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만들 계획이다. 확실한 존재 이유가 없으면 지향점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 조직에 내가 왜 필요할까’를 알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여야 한다. 스스로 자문하면 답이 나온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 대표가 전략통이라면 나는 영업통이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 권 회장이 그리는 휴넷과 함께하는 미래

교육 플랫폼 비즈니스에 총력을 다 할 것이다. 휴넷은 앞으로 교육에 관련한 모든 솔루션을 가진 플랫폼이 될 것이다. 현재도 IT 인력만 100여 명이다. 온라인 교육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AI, 빅데이터, 에듀테크 등을 활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요즘 누가 디지털 콘텐츠를 사느냐고 하는데 점점 더 그런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현재도 교수진 대상의 ‘해피칼리지’, 은퇴한 시니어들을 위한 ‘탤런트뱅크’ 등 획기적인 기획을 운영 중이다. 과거에 있었던 프로그램이지만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휴넷은 ‘행복추구기업’이다. 조 대표의 모토로 직원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이다. 휴넷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회사의 주인 말이다. 남은 여생은 달걀로 바위 치기가 될지 몰라도 단 한 명의 결심을 바꾸는 일을 할 것이라는 결심을 했다.

"33년간 '사장님', 시행착오 많아…가슴에 사표 품고 살아"



▶ 건설사 사장부터 호텔, 교육까지 남다른 이력을 자랑한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예단할 수 없는 모양이다. 평생 건설만 하던 사람이 오랜 친구의 부름을 받고 서교호텔, 제주 하얏트 리젠시 사장으로 첫 발을 디뎠다. 그게 아코르 앰배서더까지 이어졌다. 사실 처음엔 2~3년 할 수 있지 않겠나 했는데 일도 재밌고 성과도 좋았다.

사실 건설은 리스크가 큰 수주 산업이다. ‘내게 일을 줄 사람’, ‘일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 ‘일을 준 사람’이 주 고객이다. 하지만 호텔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잠재 고객이더라. 휴넷에 오니 전 인류, 모든 기업이 교육의 대상이 됐다.

▶ 인생의 반을 사장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3년간 사장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1997년 경영하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하루 아침에 쫓겨나 보기도 했다. 이후 사업도 실패했다. 이대로 인생이 실패로 끝나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강원도 문막 산골로 도망치듯 들어가 3년간 혼자 있었다. 호텔에 불려가지 않았으면 계속 그리 살았을지도 모른다. 호텔에 첫 발을 딛고 10년 안에 1등 회사를 만들고 인생 또한 1등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이 생겼다. 그래서 사회에서 받았던 혜택을 나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 빚을 갚는 여생이 되었으면 한다. 교육만큼 보람 있는 삶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스스로 정말 좋아서 했느냐고 물으면 100%, 예스(Yes)라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때로는 싫은 일도 해야 했다. 오늘만큼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다. 직장인이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하다. 그것이 휴넷에 가게 된 결정적 계기다.

▶ 업계에선 권 회장을 35세에 건설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해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한 때는 일 밖에 몰랐다. 그러니 35세에 사장이 됐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휴일도 없었고, 그저 그게 사는 것 같았다. 치열하고 옹졸했던 날들이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성공이라 생각했다. 직장 생활이 행복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 날 ‘나는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워라밸’을 생각했다. 일과 삶은 두부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워라밸을 뛰어 넘는 ‘비욘드 워라밸’ 시대가 올 것이다. 저도 애써 일과 삶을 구분지으려 하지 않는다. 탁월한 사람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일인지 삶인지 모른다. 오로지 탁월함만을 추구할 뿐이다. 앞으로 다른 기업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줄 때, 좋은 인재가 기업에 스며들 것이다.

▶ 오랜시간 전문경영인으로서 살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34세 건설사 부장 시절, 그때가 가장 소신 있던 때였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 때였다. 당시 중동에 가게 됐는데 당시 회장에 모든 권한을 달라고 했다. 회장도 7개의 미션을 줬고, 2년 6개월 만에 완수하고 들어왔다. 1년 만에 부사장, 1년 6개월 만에 사장 진급 했다. 정말 소신 있게 경영하겠다고 했는데, 그 소신이 날이 갈수록 죽더라. 직책이 높아지니 말하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향유하고 있는 것들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 경영계의 현실도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용감해지지 못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성과에 대한 기대가 높고, 대주주와의 관계도 전문경영인의 큰 고민이다. 회장님의 칭찬에 날아갈듯 하다가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당장 그만두고 싶어진다. 모든 직장인들이 가슴에 사표 하나 품고 살지 않나, 경영인들도 그렇다.

▶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

결국은 당당함이다. 근심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일조지환(一朝之患)적 근심이 있다. 하루아침에 사라질 근심이다. 보통 사람은 거기에 연연한다. 그런데 평생을 두고 걱정해야 할 종신 주의적 근심이 있다. 큰 고민을 가지고 소소한 걱정을 덮는 연습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나라가 더 잘 됐으면, 통일이 됐으면 하는 생각과 같은 커다란 화두를 가져야 전문경영인이 살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잔파도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 인생의 선배로서 모진 풍파를 맞고 있는 청춘들에게 조언한다면.

사람마다 적성과 재능이 다르다. 저는 기업가의 재목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은 할 수 있다. 극동건설 사장직을 1997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큰 실패를 맞봤다. ‘저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는데 몰라서 그렇다. 우리 속엔 ‘내’가 너무 많다. 진정한 ‘내’가 누구냐를 찾는 것이 인생이다. 때로는 실망하는 나를 알아차리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눈이 반짝이는 곳으로 데려갈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긍정적인 삶의 기술이다.

이루어진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새로운 꿈을 꿔야 한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마인드다. 아내와 비슷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 예전에 아내가 어머니 제삿날 주전자 물에 화상을 입었다. 화상병원이 마침 있어서 응급처치했다. 둘이서 ‘다행 타령’을 했다. 첫째, 여름 아니라 겨울이라 다행, 얼굴 아니고 다리를 다쳐서 다행이라고. 마지막엔 남이 아니라 내가 다쳐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 크다. 교과서, 자기계발서에도 나온다. 그런데도 건성으로 지나치기 일쑤다. 사람은 현명한 존재 같아도 우매하기 때문이다.

"청춘 합창단은 삶의 활력소…직장인도 예술적 취미 가져야"



▶ 회장님의 은밀한(?) 취미생활이 합창이라고 들었다.

2011년 KBS '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 시즌 1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넬라 판타지아'에 화음을 맞춰가는 과정을 TV로 봤다. 보고 있자니 너무 하고 싶더라. 시즌2 공고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걱정이 많았지만 공고문을 보니 52세 이상만 지원 가능하더라. 그래서 응모했다. 사실 걱정이 많이 됐다. 우리 앰배서더 직원들과 주주들이 보기에 어떨까 싶었다. 다행히 회사의 승인을 받고 참가하게 됐다.

▶ 방송이 끝난 뒤에도 8년간 ‘청춘 합창단’의 단장을 하고 있다.

청춘 합창단을 안 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평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살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래?'라는 생각이 들더라.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인생이 바뀌었다. 내 삶을 찾은 느낌이다. 사람은 역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그런 용기를 시니어들에게 주고 싶었다. 합창단 노래할 때 단원들의 얼굴이 평소 다르다. 행복한 얼굴이다. 합창단을 사단법인으로 만들고 지정기부금 단체로 기재부에 등록했다. 전국 시니어 합창단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 청춘합창단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2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시니어 합창단의 전국화와 고 글로벌(Go global)이다. 2015년도 UN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무모하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꿈을 이뤘고, 최근 우즈베키스탄 공연도 다녀왔다. 청춘 합창단이 민간 외교사절로의 역할이 크더라. 한국을 ‘졸부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일부 나라의 인식이 있다.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방탄소년단을 보라.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았나. 청춘 합창단은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시니어 합창단을 만들 것이다. 지휘자는 ‘합창’을 만들고 단장인 나는 ‘청춘’을 만들기로 했다.

▶ 청춘 합창단은 어떤 의미인가.

최고령 단원은 82세 어르신이다. 젊은이 못지않게 세계 무대를 누비며 활동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앓는 소리를 못 한다. (웃음) 합창단은 내 삶의 활력소다. 인생에 예술적인 취향 하나 정도는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행복의 메커니즘은 몰입과 망각이다. 우리가 몰입하는 순간 모든 사념을 잊어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제 2의 전성기, 인생 2막을 맞이한 것 같다.

그렇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15년만 젊었으면 어땠을 것 같냐고 물어보더라. 저는 그때로 돌아가기 싫다. 현재가 좋다. 여유도 생기고 마음이 옹졸하거나 편협하지 않다. 사물을 그대로 관조하게 되는 나이가 됐다. 젊었을 땐 할 수 없는 거다. 아주 편안한 상태다.
권대욱 휴넷 회장 인터뷰 /사진=최혁 기자
권대욱 휴넷 회장 인터뷰 /사진=최혁 기자
◇ 권대욱 회장은
△ 1951년 출생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한보건설 사장 △유원종합건설 사장 △극동건설 사장 △효명건설 회장 △호텔서교 하얏트 리젠시 제주 사장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휴넷 회장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최혁 기자, 영상=조은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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