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교황의 방북을 기대하는 이유
잇단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한국 천주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은 1886년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였다. 하지만 그게 박해의 끝이 아니었다. 6·25전쟁을 전후로 또 한 번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전쟁 발발 직전까지 북한 지역의 모든 성직자가 체포돼 구금되거나 실종됐다. 공산군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도 수많은 사제와 신자들이 피살되거나 북송됐다. 평양으로 잡혀간 700여 명의 미국인 포로와 성직자, 수도자 등이 1950년 겨울 중강진의 수용소까지 280㎞를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걷다가 다수가 희생된 사건은 천주교사에 ‘죽음의 행진’으로 기록돼 있다.

종교도 '전시용'인 북한

해방 전 북한에는 2600여 개의 교회와 57개의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큼 기독교가 번성했다. 하지만 공산정권은 교회를 폐쇄하고 교인들을 박해했다. 많은 신자들이 남으로 내려왔고, 미처 월남하지 못한 사람들은 몰래 신앙생활을 하는 ‘지하교회’ 신자가 됐다.

신앙의 암흑천지였던 북한에 교회와 성당이 새로 세워진 건 1988년. 평양의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이때 지어졌다. 남북한 대화와 교류가 시작되고 해외 종교인들의 방북이 늘어나면서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주교인협회 등의 종교 단체들도 활동을 재개하거나 신설됐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5월 말 발표한 ‘2018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 따르면 종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북한에서 119명이 처형되고 770명이 수감됐다. 실종, 강제 이주, 부상자도 179명이나 됐다. 탈북자 1만1805명에게 물어본 결과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전무하다고 답한 사람이 99.6%에 달했다. 대도시 평양에 교회가 둘, 성당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전시용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수락할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교황을 만나 김정은의 구두 초청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천주교 신자인 문 대통령 제안으로 이뤄진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까. 교황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를 강조해온 만큼 희망 섞인 전망이 많다.

교황, 장충성당서 미사 집전할까

반면 북한에는 사제가 없어 교황의 사목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총련 월간지 ‘조국’에 따르면 2004년 기준 북한의 천주교 신자는 3000여 명이다. 지하신자가 1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제는 단 한 명도 없다. 교황을 초청한 속내가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교황과의 만남을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종교 탄압 국가라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럼에도 교황의 방북을 기대하는 건 종교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의 순교 역사가 말해주듯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신앙이 전혀 없는 가짜 신자들을 교회에 앉혔더니 나중엔 진짜 신자가 되더라”고 했다. 교회 주변에서 얼쩡거리다 보면 주기도문을 외우고, 절집에 드나들다 보면 반야심경을 읊조리는 게 세상 이치다.

오는 30일이면 교황청 특사로 파견된 장익 신부(현재 주교)와 정의철 신부가 장충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린 지 30주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다면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엇갈리는 전망 속에서도 교황의 평양 방문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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