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영 경제부 기자
17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출범 토론회에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8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머 교수를 인용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일에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같은 주장을 폈다.
하지만 로머 교수의 실제 견해는 홍 위원장의 ‘공감’과 정반대에 가깝다. 9일 본지 인터뷰에서 로머 교수는 “법으로 소득을 높여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며 “늘어난 소득이 기술 습득으로 이어지는 게 정책 성공의 관건”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처럼 ‘정부가 인위적으로 늘린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게 아니라, 늘어난 소득이 교육 등 생산성을 높이는 데 쓰여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홍 위원장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계속 이어졌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여론 악화와 ‘고용 참사’도 그에게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로 풀이됐다. 그는 “고용과 투자가 부진하고 국내외 기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는 상황이야말로 소득주도성장이 왜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소득주도성장을 바꾸고 폐기하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해서 성과를 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경제지표 악화는 여전한 대기업 갑질 때문” “보수 세력의 공격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이 잘 안 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고용 통계 악화를 놓고 일희일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서비스업이나 경비업 등 일부분에 한정된 얘기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작 이날 토론회 패널 중에는 현장을 찾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내쫓긴 근로자나 사업을 접어야 했던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은 없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견해를 왜곡하고 통계를 비틀면서 소득주도성장만을 외치는 ‘단합대회’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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