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업단지에서 야근하는 업체가 거의 없어 저녁이 되면 일대가 암흑으로 변한다는 한경 보도(10월18일자 A1, 5면 참조)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제조업 현실을 보여준다. 경기 침체,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 부진, 최저임금 급속 인상,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이 겹치면서 산단의 저녁을 밝히던 공장의 불빛이 꺼져 가고 있다. 일감이 크게 줄어 낮에도 인력과 설비를 놀리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제조업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인천남동, 시흥시화 등 수도권 산단 입주 중소·중견기업들은 “잔업과 특근으로 주문 물량을 맞추던 시절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고 말할 정도다.

제조업 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인과 임금을 받는 근로자일 것이다.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회사 경영 부진에 따른 구조조정, 잔업 폐지로 인한 임금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보다 사정이 나은 기업의 근로자들도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탓에 월급이 확 줄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가 찾아와 울면서 일을 더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산단 기업인의 얘기는 무엇이 진정으로 근로자를 위하는 정책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법이 보호하겠다는 계층을 어렵게 만든다면 폐지하거나, 최소한 숨통이라도 틔워 주는 게 순리다. 근로시간 단축에 찬성하는 근로자들도 있지만 ‘쉴 권리’보다 ‘일할 권리’가 더 절박한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 휴일·야근·초과근로수당 등에 소득 20~30%를 기대어 온 중소·중견기업 근로자 상당수는 임금이 줄어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등을 걱정하는 처지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주 52시간 근로’가 되레 사회적 약자들을 경제적 곤궁 속으로 몰아넣어서야 되겠는가.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노사가 합의하거나 근로자가 원하면 제한 없이 근무할 수 있게 한다. 더 일하고 싶거나 개인 사정 때문에 더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해야 할 ‘사적 자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직된 노동시간 단축이 초래하고 있는 근로자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