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담비가 자살 모임을 소재로 한 블랙 코미디 ‘배반의 장미’로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섹시한 매력을 지닌 의문의 여성 ‘미지’ 역을 연기했다. 전작 ‘탐정:리턴즈’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였지만 코미디 영화는 아직 낯설다. 배우로선 섹시한 캐릭터도 처음이다. 그는 “코미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부담을 느꼈다”면서도 맛깔나게 육두문자 연기까지 선보여 ‘제2의 김수미’라는 극찬을 받았다. 가수로 시작해 드라마를 지나 드디어 영화에 발을 들인 손담비를 만났다.

‘미쳤어’ ‘토요일 밤에’ 등을 통해 ‘섹시 가수’로 유명해진 손담비는 데뷔 2년 만인 2009년부터 연기를 시작해 여러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왜 늦었을까. 그는 “드라마 대본만 많이 들어왔다”며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아 출연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배우가 꿈이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얼떨결에 드라마 주연을 맡았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못 했죠. 가수 활동이 너무 바빠서 연기를 제대로 병행할 수 없었거든요. 더 적극적으로 연기를 병행했더라면….”

하지만 그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8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면서 잠잘 시간도 거의 없었다. 음악방송, 라디오, 광고, 행사 등 하루 평균 다섯 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자주 쓰러져 대기실에서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였다. 여유가 없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잘나갔던 그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어떤 정신으로 활동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거든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공허했어요. 오만 생각이 다 들었죠. 여유가 없다 보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영화 ‘배반의 장미’의 한 장면.
영화 ‘배반의 장미’의 한 장면.
‘섹시 가수’로 굳어진 이미지도 문제였다. 손담비는 “연기할 때는 섹시한 이미지를 벗고 싶었지만 내 뜻과 달리 드라마나 영화 관계자 중에는 그런 이미지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내게는 섹시 이미지밖에 없나 하고 많이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그저 원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작품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많이 돌아서 멀리 왔다. ‘배반의 장미’에는 어떻게 출연했을까. 손담비는 “회사에서도 처음에 ‘이건 안 할 것 같은데’라며 대본을 줬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한 번에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큰 도전이었지만 미지 역할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게 포인트는 아니기 때문이다. 손담비는 “이제는 섹시한 캐릭터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정상훈과 김인권은 최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영화가 시작하고 20분 정도 지나 손담비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띄웠다. 이어 “코믹 연기를 정말 잘한다. 특히 욕을 맛깔나게 한다. 제2의 김수미”라고 칭찬했다.

“연기자로선 당연한 말이지만 ‘연기 꽤 하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연기력 칭찬에 대한 갈증이 있죠.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해 주실까 떨리고 두려워요.”

‘배반의 장미’를 통해 영화 주연을 경험한 손담비는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달에는 유재석을 필두로 한 SBS 농촌 버라이어티 ‘미추리’에 고정 출연한다. 내년엔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그는 “예전에는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 가수 활동을 잠정 중단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엄정화 선배가 저의 롤모델입니다.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힘들겠지만 제가 가고 싶은 길입니다.”

글=노규민/사진=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