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설계 예른 웃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1973년 10월20일, 시드니 베넬롱포인트에 독특한 모양의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됐다. 돛을 연상시키는 조가비 형태의 설계로 지어진 오페라하우스는 이후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6년이나 걸린 건설 과정에선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설계자는 덴마크 건축가 예른 웃손. 1955년 32개국 233개 작품이 출품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국제 설계 공모전에서 당시 신참내기였던 웃손은 세계적 명성의 건축가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웃손의 설계도는 투시도도 없고 설계 기준을 어긴 것이었지만 심사위원 에로 사리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웃손이 낸 설계의 독창성을 강조하며 우승 후보로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웃손의 설계에 따라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계도에 제시한 공사비(700만호주달러)의 15배에 달하는 1억200만호주달러가 투입되고 예정보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난이 쇄도했다. 웃손은 1966년 수석건축가 자리를 내놓고 호주를 떠났다.
오페라하우스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건축계에 큰 발전을 가져온 건물로 꼽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웃손은 200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하지만 웃손은 200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뜰 때까지 호주를 방문하지 않았다. 오페라하우스의 실물도 보지 못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웃손의 설계에 따라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계도에 제시한 공사비(700만호주달러)의 15배에 달하는 1억200만호주달러가 투입되고 예정보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난이 쇄도했다. 웃손은 1966년 수석건축가 자리를 내놓고 호주를 떠났다.
오페라하우스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건축계에 큰 발전을 가져온 건물로 꼽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웃손은 200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하지만 웃손은 200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뜰 때까지 호주를 방문하지 않았다. 오페라하우스의 실물도 보지 못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