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각료회의 후에도 입장 불변…조세회피 사면 관련 내분은 해소

이탈리아 정부가 유럽연합(EU)의 비판과 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 강등 조치 등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대폭 확대한 내년 예산안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내각은 20일 오후(현지시간) 내년 예산안에 대한 EU 집행위원회의 지난 18일 공식 경고에 어떻게 대응할지와 조세회피 사면과 관련한 포퓰리즘 연정 내부의 이견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각료회의를 개최했다.
EU압박·신용강등에도 버티는 伊…"확장 예산안 수정 없을 것"
회의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내외의 압력과 경고에 굴복,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설정한 내년 재정 적자를 2%로 줄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으나, 정부는 회의 직후 예산안 수정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는 회의 후 "우리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밝혀, 예산안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성향의 '동맹'이 결성한 이탈리아 연립정권은 재정 적자 규모를 전임 정부의 계획보다 3배 늘린 GDP의 2.4%로 설정한 내년 예산안을 최근 EU에 제출했다.

그러자, EU의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 예산안을 기각하고 과징금을 물리기 위한 수순의 첫 공식 절차로 이탈리아 정부에 지난 18일 경고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EU는 GDP의 130%가 넘는 국가부채를 지고 있는 이탈리아가 전임 정부의 당초 약속과 달리 재정확장 정책을 쓸 경우 그리스식 채무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 19일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종전 Baa2에서 투자 적격 등급의 마지막인 Baa3으로 한 단계 낮췄다.

포퓰리즘 정부의 또 다른 실세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무디스의 결정과 관련, 20일 "정부는 신용평가사, EU 집행위원회, 일부 내부적 오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며 신용등급 강등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신용평가사는 전에도 이탈리아에 대해 틀린 적이 있다.

그들은 이번에도 역시 실패할 것"이라며 "정부는 단지 이탈리아인들을 위한 최선의 방책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주세페 콘테 총리는 회의를 마친 뒤 "예산안이 모든 당사자에 의해 분명한 승인을 받았다"고 말해 조세회피 사면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됐음을 밝혔다.

가난한 남부를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오성운동의 대표인 디 마이오 부총리는 앞서 해외에 보관돼 있다가 이탈리아로 되돌아 온 자금에 대한 조세회피 사면을 확대하는 방안이 자신도 모르게 예산안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며, 이 방안을 제안한 살비니 부총리와 충돌했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동맹'은 자신들의 주요 기지 기반인 자영업자들과 중소 상공인들을 위해 조세회피 사면 확대를 추진하는 반면, 오성운동은 이 같은 방안이 부정한 돈세탁 등에 이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테 총리는 아울러 "우리는 EU에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예산안을 짰는지를 설명할 것"이라며 "(예산안과 관련해)향후 EU와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는 오는 22일 정오까지 EU 집행위원회의 지난주 경고 서한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고, EU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전망이다.

저소득층에 기본소득 제공, 감세, 전 정부가 올린 연금 수령 연령 하향 등 핵심 선거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늘리려 하는 이탈리아 정부는 정부 지출이 확대되면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되고, 이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등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